「혼란의 터널」끝 안보인다/급변하는 소…긴급진단/김유남 단국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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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옐친의 민주혁명으로 이어지면서 공산당과 소연방공화국이 동시에 붕괴되고 있다. 소련의 혁명은 아직도 본질적으로 진행형에 속할 뿐이다.
현재의 상황은 소련의 국내외환경이 고르바초프의 퇴진을 재촉하고 있으며 권력의 공백상태를 염려한 나머지 옐친의 빠른 등단을 요구하고 있다. 비록 고르바초프는 합헌적 절차에 따라 90년 5년임기의 소연방 대통령과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자리를 겸하게 되었으나 이제공산당이 해체되고 소연방이 붕괴에 직면하면서 존재해야 할 원인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의 퇴진과 더불어 옐친의 등단은 매우 자연스러운 합헌적 정권이양이 될 것이다.
이제 강경보수세력이 붕괴되고 민주개혁이 결정적인 단계에 이르면서 오늘의 소련은 용기와 도덕적 정의감이 강한 지도자를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한 시대가 선택한 대통령으로서 고르바초프에게 부여된 역할이 끝난 것이다.
비록 옐친은 현재 민주투사로 부각되고 있으나 날이 가면서 민주혁명보다는 붕괴된 소련제국의 대를 잇고자 러시아제국의 부활을 꾀할 것이다. 그는 위대한 러시아의 재건을 위한 민족지도자로 등장하고 있다.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건설된 소연방제국이 붕괴되면서 민주주의와 슬라브­러시아민족주의 이름으로 러시아제국이 새롭게 탄생하려는 역사적 분기점에 이른감이 없지 않다.
군사쿠데타가 불발로 끝날 수 있었던 외부적인 요인으로 미국을 뺄 수 없다.
소련의 민주세력을 구제한 미국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소련의 민주세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경제원조를 필요로 한다. 1950년대에 있었던 마셜플랜과 같은 규모로 대소 무상원조가 있을 것인가. 소련의 경제가 무난히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되기 위해 소요되는 투자액은 줄잡아 연간 5백억달러로 향후 5년간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현재까지 서방이 약속했거나 일부 진행중에 있는 대소 경제원조는 한국이 30억달러,독일이 70억달러,이탈리아가 25억달러,스페인이 15억달러,프랑스와 캐나다가 각각 10억달러,미국의 대소 곡물차관으로 15억달러가 있을 뿐이다.
미국의 대소 경협자세가 미온적인 까닭은 자국의 재정적자에 기인하고 있기도 하지만 미소관계는 구조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다고 하는 초강대국간의 견제의식과 상대적 배타의식에 있다고 여겨진다.
19세기 중엽 토크빌은 그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이미 미국과 러시아는 향후 수세기동안 세계를 지배하는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서로가 경쟁관계를 유지하리라고 에견했다.
비록 브르제진스키 박사는 그의 저서 『대실패』에서 2010년께 소련은 탈공산주의 정권으로 탈바꿈하게될 것을 예견하고 있으나,그후 미국에 도전하는 새로운 제국으로 등장하리라는 예언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소련의 재기가 최소한 반세기 이상을 소요하리라고 믿은 나머지 먼 훗날에 대한 장기적 전망을 삼간 듯하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사학자와 정치학자들은 미국의 대소원조는 조심스러울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볼때,소련의 경제문제는 장기간의 치료와 투병을 요구하는 지병이며,미국의 지원은 그 환자가 악화되지 않는 정도에서 간호하는 우호관계에서 끝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소련의 민주혁명은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일 뿐 혼란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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