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을 살리자” 적극지원 채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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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의 대응/식량등 공급방법 모색/적기 놓치면 또다른 위기 우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공산당해체 선언으로 소련의 개혁과 변화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자 이때껏 경제지원등에 소극적인 대응을 해오던 미국이 소련을 살리자는 적극적인 쪽으로 정책을 전환시켜가고 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고르바초프의 공산당서기장직 사임 소식을 듣고 『소련이 미국이 바라던 쪽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면서 『개혁을 향해 한발짝 더 내디딘 이번 조치를 환영한다』고 반응했다.
미국은 소련의 강경파들에 의한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후에도 소련이 시장경제등의 채택등 확실하고 구체적인 개혁에 발을 내딛지 않는한 대규모 경제지원등을 할 수 없다는 유보적인 태도를 표명해 왔다.
또 외교적으로는 소련 중앙정부의 권위를 의식하여 발트3국의 독립요구등에 대해서도 종전의 기본입장을 견지한 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를 기피했다.
부시 대통령은 『고르바초프의 공산당해체 선언이 있었다 해도 소련이 취하는 개혁조치를 좀더 두고 보아야 한다』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으나 이미 미 행정부는 대소정책의 전면적인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공산당해체선언 직후 NBC방송대담에 나온 체니 국방장관은 미국이 발트3개국의 독립을 인정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밝혔다.
베이커 국무장관도 ABC방송과의 대담에서 26일로 예정된 소련의 최고회의에서 경제개혁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결정될지가 미국의 관심사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지금까지 경제지원등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온 것은 소련의 개혁방향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외국투자에 대해 비난하던 국가보안위원회(KGB)나 군비축소를 반대하던 야조프 전 국방장관이 모두 제거된데다 고르바초프가 공산당 해체 선언까지 한 마당에 더이상 개혁에 의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더욱이 이같은 서방의 지원이 적기를 놓칠 경우 소련은 식량부족등으로 인해 또다른 위기에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베이커 국무장관은 미국이 지금까지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이유로 누구를 상대로 도와주어야 하느냐는 주체가 모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옐친과 고르바초프간의 권력관계가 자리잡는 것을 보아야 거래할 당사자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경제지원은 소연방을 상대할 것이 아니라 개별공화국들과 직접 거래를 해야 하며 고르바초프보다는 시장경제도입을 강조했던 옐친을 상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련에 대한 지원방식에 대해서도 여러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다.
소련에 무역상 최혜국대우를 해주는 것은 물론 대소무역에 대한 수출입은행의 신용보증,대소투자에 대한 안전보장 등 제도적인 뒷받침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은 당장 급한 에너지·식량·생필품의 공급을 어떻게 원활하게 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슐츠 전 국무장관은 차제에 세계경제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1944년 IMF(국제통화기금)와 세계은행을 창설,이를 축으로 서방경제 질서를 구축했듯이 이제는 시장경제를 채택하게된 소련까지 포함해 새로운 경제질서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일본의 대응/추가 식량원조를 검토/동구형 민주혁명발전 기대
「민중의 분노폭발」「경제혼란이 우려」­소련 공산당의 「붕괴」에 일본열도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25일 밤 가이후(해부준수) 총리·나카야마(중산태랑) 외무·하시모토(교본용태랑) 대장·나카오(중미영일) 통산·사카모토(판본삼십차) 관방 등이 참석한 긴급관계장관회의는 지난번 런던의 서방선진7개국(G7) 정상회담때 마련된 대소지원 6개 항목 합의의 범위안에서 새로운 지원방안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회의에서 일본정부는 최근 소련의 사태를 「체제의 근본적 변화」로 판단,동유럽형 민주혁명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 소식통은 이날 회의결과 소련이 금년 흉작일 것으로 보고 식량사정 악화를 돕기 위해 이미 결정이 끝난 긴급식료품 원조 1억달러를 대폭 추가할 것을 검토중이며 옐친 대통령이 주도하는 경제개혁의 진전도 예상,채무구제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
회의에서는 와타나베 심의관을 다시 G7전문가회의(25일)에 파견할 것을 결정,G7에 의한 대소 지원협조에 구미 각국과 협조하는 외에 별개로 대소 협력책을 마련,적극지원할 뜻을 전하기로 했다.
한편 소련공산당 해체소식에 일본야당은 적지않게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본공산당은 서둘러 25일 기자회견을 자청,대응방침을 밝혔다.
후하 데쓰조(불파철삼) 일본 공산당위원장은 소련공산당 해체에 대해 『지금의 소련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나침반을 잃었다. 오랫동안 무책임한 대국주의와 관료주의에 침식,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구별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라고 비판하는 한편 일본에서 하고 있는 일의 성패는 외국의 사건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 일본공산당과는 무관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공산당소속 국회의원들은 이같은 뉴스에 충격을 받은듯 불만을 터뜨려 대조를 보였다.
마사모리(정삼성이) 중의원은 『당서기장이 자신의 당해산을 말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럽다』고 말했으며 이밖의 의원도 『자신의 사명을 포기한 것』『스스로 믿어온 이론을 포기해버렸다』고 불만을 토로.
어떤 의원은 『소련이 일본공산당의 본가이므로 일본에서 공산당은 왜 필요한가』하는 반공여론이 나올까 두렵다고 불안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신문들은 26이 일제히 1면 머리기사로 「소련공산당 해체」를 보도하는 한편 사설·해설·기사·각국의 반응·지식인들의 목소리를 다각적으로 취재,「러시아혁명이래 74년간 지배에 종막을 고했다」는 역사적 의의를 크게 다뤘다.
아사히(조일)신문은 「소련공산당의 붕괴와 신세계」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금세기 최대급의 세계사적 변혁을 우리가 지금 눈으로 보고 있다』고 사태의 의의를 강조했다.
한 비교문명론교수는 공산당해체의 감상에 『감개무량하다. 1917년 혁명의 결말이 났다. 세계사의 대사건 프랑스혁명과 똑같은 의미를 지닌다. 지금 진정한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그 사상사적 의의를 강조했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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