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4) 제 86화 경성야화(29) 조용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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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조선일보는 1924년 신석우가 부사장이 되어 이상재를 사장으로 추대하고 이상협을 중심으로 한 편집진용을 쇄신하였다.
그 무렵 일본에 있는 노동상애회 회장 박춘금이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와 김성수를 식도원으로 불러내 권총으로 협박하고 구타한 사건이 있었다.
상애회란 관동대진재 때 학살당한 조선인 노동자들의 유가족들을 규합해 일선융화라는 이름아래 이들로부터 임금중 일정액을 떼어먹는 이른바 착취기관이었다. 이 돈으로 박춘금은 마음껏 호의호식을 즐겼다.
이 때문에 동아·조선 두 신문사는 상애회와 박춘금을 공격해 왔었는데 박춘금의 뒤에는 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환산학길)가 있어서 박은 이를 믿고 갖은 행패를 부려왔었다.
경성에 나타난 박춘금은 식도원으로 송진우 사장과 김성수를 불러놓고 권총으로 협박하면서 「동아일보가 배일사상을 고취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라고 강요하였다. 두 사람이 이를 거절하자 박춘금은 그들을 이틀동안이나 식도원에 감금하였다.
이 사실이 경무국에 알려지자 경무국장 마루야마는 박춘금을 꾸짖고 두 사람을 풀어주도록 지시하였다.
그 뒤 박춘금은 또 송진우에게 해외동포 위문금 중에서 10만원을 상애회에 주겠다는 승낙서를 쓰라고 강요하였다.
이 무렵 편집국장 이상협이 동아일보를 사직하자 유능한 기자들이 대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때 동아일보는 연정회 사건으로 사회주의자들의 공격을 받는 한편 편집국장 이상협이 많은 후배들을 데리고 동아일보를 떠남으로써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한편 조선일보는 신석우의 계획대로 동아일보에서 퇴사한 언론계의 귀재 이상협을 편집고문으로 영입하고 그 휘하에 있던 많은 유능한 편집기자들을 고스란히 맞이하여 신문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조선일보에 들어간 이상협은 1924년 가을 우리 나라 신문으로는 최초로 조석간제를 도입, 부인기자를 채용하여 가정면을 만들고 연재만화를 개시하였다.
「멍텅구리」라는 연재만화는 독자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서 서울이 온통 「멍텅구리」 화제 속에 들끓었다. 「멍텅구리」의 테마는 시사를 풍자하는 것으로 당시 민중들이 하고싶어도 할 수 없었던 말을 「멍텅구리」를 통해서 말해 줌으로써 독자들은 조선일보에 박수와 갈채를 보냈다.
만화의 아이디어는 이상협이, 그림은 노수현이 각각 맡았다.
동아일보에 있을 때 이상협은 「횡성수설」이라는 칼럼을 담당·집필하여 그 촌철살인의 칼날같은 필치로 독자들의 절찬을 받은바 있었는데 그 아이디어를 「멍텅구리」로 옮겨 총독부 당국자의 가슴을 뜨끔하게 하고 독자의 울분을 속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이밖에도 가정부인란을 신설해 주부독자를 끌어들이고 지면을 다채롭게 꾸며 그때까지 민족신문을 표방하며 확고한 지위를 닦아온 동아일보를 압도하였다.
이리하여 동아일보·조선일보·시대일보 등 3개 일간지가 민족지를 대표해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여기서 한가지 지적해야 할 것은 1923년께부터 젊은 인텔리들 사이에 사회주의사상이 급속히 번져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소비예트 정부가 수립되고 그 여파가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일본에서는 1928년 쌀소동이 일어난 후 전국적으로 사회주의사상이 급속히 확산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유학생들의 영향으로 사회주의사상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사회주의사상에는 「식민지 해방」이란 조항이 들어 있어서 독립을 쟁취하는 길은 노동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앞서 말한대로 박중화·신일용 등이 발기한 「조선노동공제회」가 이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뒤이어 「조선노동총동맹」이 조직되었는데 그후 무산계급운동은 급속히 진전되어 사상단체인 「북풍회」「화요회」「북성회」등이 잇따라 조직되었다.
이들 사상단체의 지도인물은 김약수·박일병·김한·박헌영·김사국·박원희·정종명·주세죽 등이었고 이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사에 대거 영입되었다.
이 때문에 신문의 압수사태가 더욱 빈발했고 급기야 1925년 무기정간을 계기로 좌익기자들이 대량 해직되었다. 이들은 그해 11월에 신의주에서 공산당사건이 발각되면서 모두 검거되었다.
이렇게 해서 조선일보는 총독부 당국이 지명한 좌파기자들을 일소하는 한편 고문이었던 이상협도 조선일보를 물러나게 되었다. 이로서 조선일보는 신석우·안재홍·김동성·최선익이 주도권을 잡게 되었고 좌익 색채가 없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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