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재경부의 '코드 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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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경제부 허용석 세제실장이 정부 과천청사 기자실을 예고 없이 찾아왔다. 7일 오후 3시였다. 같은 시간 경북 안동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2단계 국가균형발전 구상' 발표회가 열리고 있었다.

허 실장은 "세계가 직접세 인하 경쟁에 들어갔다"며 분위기를 잡았다. 국가균형발전위가 지방이전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깎아주기로 했다고 발표한 데 따른 잡음을 의식한 눈치였다. 그는 대뜸 "지방이전 기업의 법인세를 깎아주는 데 부처 간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까지 법인세 감면에 손사래를 치던 재경부가 순식간에 정반대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허 실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기업이 경영하는 데 세금 부담이 커서는 안 된다는 게 원칙"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재정 부담을 고려해 세율을 (더 내릴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고도 했다. 지방으로 옮기는 기업뿐만 아니라 형평성을 고려해 법인세 자체를 깎아주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는 의미다.

잠시 시곗바늘을 2005년 10월 3일로 되돌려 보자. 한나라당이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을 내려 8조9000억원의 세금을 깎아주자는 10대 감세정책을 제안한 날이다. 한나라당은 "세계적인 법인세 인하 경쟁에서 뒤처지면 외국인투자가 줄어든다" "국내기업 투자를 위해서도 법인세를 깎아줘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즉각 반발했다. 재경부가 총대를 멨다. 한덕수 당시 경제부총리는 다음날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은 감세에 따른 경기부양 효과가 크지 않다" "세수 차질이 우려되는데 감세는 어렵다"고 밝혔다. 재경부는 33쪽짜리 '감세논쟁 주요 논점 정리'라는 반박자료를 기자실에 배포했다. 재경부의 반대 논리는 간결하고 선명했다.

2년간 경제여건이 크게 달라졌을까. 다만 법인세에 대한 재경부 입장은 딴판이 됐다. 배경이 궁금해 그 연유를 물었다. 세제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균형발전에 재경부가 재를 뿌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제발 행간의 뜻을 읽어 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누가 뭐래도 법인세 인하는 타당한 방향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게 영 마음에 걸린다. "허 실장 발언의 알맹이는 지방이전 기업에만 법인세를 깎아주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하는 세제실 직원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정경민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