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52. 미스 코리아 - 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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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성공리에 끝마치고 여의도 공항에 돌아와 기념촬영을 했다. 필자와 오현주씨, 오 양의 어머니(사진 앞줄 왼쪽부터).

놀랍게도 미국 롱비치의 지역 신문들은 올해의 미스 유니버스를 단연 미스 코리아가 차지할 것이라고 대서 특필했다. 그러나 나는 낙관할 수 없었다. 모델 출신이었던 미스 일본은 큰 키와 늘씬한 체격에 서구적인 미모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미스 코리아의 절대적인 인기에 눌려 스포트라이트을 받지 못하고 초조해 보이기는 했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미스 일본이 왕관을 쓰게 될 것이 거의 확실했다.

미스 코리아를 치켜세워 준 신문 기사들에 고무되어 있는 현주와 그 가족들에게 나는 알아듣도록 미리 얘기하기로 했다.

"현주야. 우리는 지금까지 생각지도 않게 좋은 성과를 내지 않았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돼. 오늘 저녁 만약 미스 일본이 일등에 당선 된다 하더라도 발표가 나면 네가 제일 먼저 달려가 미스 일본에게 축하해야 된다. 반드시 그래야만 사람들 성원에 보답하는 길이다. 알았지?"하고 등을 두들기며 윙크했다. 현주는 그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현주가 그 날 저녁 대회 심사 때 입은 드레스는 양단 15마와 시폰 30마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이 드레스로 디자이너 클럽에서 의상상까지 받게 되었다. 내가 미국 유학했던 시절 나를 일하도록 허락해 주셨던 의류 회사의 사장님인 미스터 타박은 나의 수상 소식을 듣고 나보다 더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네가 자랑스럽다. 오늘 대회에서 미스 코리아 드레스가 가장 빛났다." 그리고는 나를 안아 주셨다.

대회 분위기는 절정에 도달했다. 사회자가 1959년도 미스 유니버스를 발표하는 순간이었다.

"올해의 미스 유니버스~미스 저패~엔!"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 우리의 미스 코리아 오현주는 내가 충고한대로 당선된 미스 일본에게 달려가 포옹함으로서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분위기를 감동적으로 몰고 갔다. 대회가 끝난 후, 그 동안 우리를 약간 경계하던 미스 일본 측에서 감사의 뜻으로 도시락을 보내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날 밤 현주는 침대에 엎드려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미스 일본이야. 흑, 흑."

다음날 아침 현주와 나는 쌓아 두었던 할리우드에서 온 전보를 열어 보았다. 내용은 내로라하는 할리우드의 영화사 중 하나인 파라마운트사에서 현주를 스크린테스트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준비 중인 영화 '수지 웡의 세계(The World of Suzie Wong)'의 주인공 후보로 출연하는 데에 생각이 있다면 스케줄에 따르라고 적혀 있었다. 나와 현주는 상의 끝에 테스트를 받아보기로 했다.

나에게는 뒤처리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대회 간부들과 보도부장에게 감사 편지를 써 놓고 롱비치를 떠났다. 그날 밤 호텔에서 나는 밤새도록 한국일보사에 보낼 보고서를 썼다. 이곳에서의 식지 않은 감동을 그대로 전하려고 애썼다. 후에 알게 되었는데 그 보고서가 거의 수정을 거치지 않고 신문에 실려 크게 화제가 되었었다고 한다.

노라 ·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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