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죄악”교리 어긋나 의혹/풀리지않는 집단변사 실마리(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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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현장 주변인물 행적 모순/진술내용도 저마다 달라/천장은신 발견못한 것도 의문
오대양사건 수사가 한달을 넘기면서 그동안 제기된 여러 의혹 가운데 사채행방과 암매장범들의 자수배경은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으나 87년 8월 32명 집단변사의 진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13일로 예정된 검찰의 변사현장 재조사를 앞두고 당시의 현장상황과 관련자들의 행적,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의문점들을 되짚어 본다.
◇집단변사과정=채권자 폭행사건으로 경찰조사도중 졸도,병원에 입원해있다 8월24일밤 종적을 감춘 박순자씨는 25일 오후 4시쯤 오대양 직원들과 함께 용인공장으로 가 천장에 은신처를 마련,숨어지내기 시작했다.
김영자·정화진씨 등은 함께 온 유야원생·양로원 할머니 등과 함께 아래에 남아 음식물·메모지 등을 천장으로 전달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8월28일 오전 10시 채권단의 제보로 충남도경 형사대가 출동,공장안에 있던 54명중 유아원생등 49명을 연행했으나 박씨를 찾는데는 실패했다.
사건직후 박씨를 찾기 위해 매일 한차례 이상씩 공장에 들렀던 박씨의 남편 이기정씨는 처남 용준·용택·용주씨,오주양행 직원 6명과 함께 밤 12시쯤 공장을 찾아왔다.
8월29일 이씨 일행은 박순자씨의 어머니가 이곳에 있는 것을 보고 박씨의 행방을 추궁하다 오전 2시쯤 박용주씨가 정화진씨를 때려 병원에 입원시켰다.
이후 이씨등은 공장입구옆 소파에서 오전 6시까지 깜빡 잠이 들었다고 진술하고 있고,이날 오전 대전으로 연행됐다가 풀려난 뒤 공장으로 다시 돌아온 김영자씨도 때마침 현장에 있다가 남아있던 할머니 3명과 함께 식당옆 큰방에서 잠을 잤다고 말하고 있다.
오전 8시쯤 김씨가 「용준이 행패부림,사장님 한번만 나타나시면 수습될 것 같습니다」라는 메모를 천장으로 전달했다.
30여분쯤 뒤 천장에서 쨍그렁 소리와 함께 석고보드 2장이 떨어졌고,그 구멍을 통해 김씨가 천장속의 시체를 발견했다.
김씨는 낮 12시쯤 이 사실을 이기정씨에게 알린 뒤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대전의 충남도경으로 향했다.
한편 이씨는 오전 7시쯤 처남들과 함께 오산으로 가 아침식사를 한뒤 혼자 정씨가 입원한 병원에 문병갔다 이곳을 찾아온 김씨를 통해 변사사실을 전해들었다.
이씨는 공장으로 돌아와 그것에 있던 오주양행 직원들과 함께 공장을 뒤졌고,오후 2시쯤 연락받고 도착한 다음 식당천장의 벌어진 틈새로 변사자들을 발견,오후 3시50분쯤 경찰에 신고했다.
◇행적의 의문점=이씨등은 정씨를 병원에 데려간 시간이 오전 2시라고 말하고 있으나 병원기록에는 오전 4시에 도착한 것으로 돼있어 2시간동안의 행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 김영자씨가 시체발견 당시 공장주변에 아무도 없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때 공장에 남아 있었던 오주양행 직원들의 행적이 오리무중이다.
김씨도 시체발견후 29일 오전 9시∼12시까지의 행적이 공백으로 남아있으며 이기정씨 역시 공장도착후 신고때까지 3시간여동안 무엇을 했는지가 불투명하게 남아 있다.
이밖에 ▲정씨의 상처가 2바늘 꿰매는 경미한 것으로,병원측이 다음날 오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입원까지 시킨 점 ▲김씨가 이씨에게 시체발견을 알린후 그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차까지 대절해 대전의 충남도경으로 신고하러갔던 점 등도 그 이유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엇갈린 진술=김영자씨는 석고보드 2장이 떨어져 그 구멍을 통해 시체를 봤다고 말했으나 이기정씨는 3시간이상 내부를 찾는 과정에서 그런 구멍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정화진씨는 기타로 얻어맞고 피를 너무 흘려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고 진술했으나 이씨는 피는 별로 흐르지 않았다고 말해 서로간의 진술이 어긋나고 있다.
또 29일 오후 1시50분쯤 공장주인인 현모씨가 공장에 찾아왔을때 이씨 등은 아무런 말도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현씨에 따르면 이씨등이 『우리는 채권자다. 채권자들이 회의를 하고 있으니 못들어간다』며 자신을 제지했다고 밝히고 있다.
합판을 각목위에 깔아놓아 조금만 움직여도 덜그덕거리고 쿵쿵소리가 났다는 여러 진술에 비춰볼때 이들의 죽음의식이 이뤄진 시점에 아무런 소리를 들을 수 없었는가 하는 점은 더욱 이상하다.
◇변사자 행적=▲도피직전 단골슈퍼에서 평소 3배물량인 1t트럭 3대분의 생필품을 대량 구입한 점 ▲곽남옥씨(사망)가 올라갔다 내려올때 찾겠다며 정화진씨를 통해 물통옆에 3천7백만원의 거금을 숨겨놓은 점 ▲평소 박씨가 『자살은 죄악이다. 자살하면 지옥으로 간다』는 교리를 자주 이야기했던 점 ▲구원파의 「들림」(말세대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을 지칭)이 살아 있는 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리라는 점 등으로 볼때 「종교의식」을 통한 「합의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고 있다.
더욱이 ▲32명의 변사자 가운데 가족관계가 16명이나 됐는데 정액이 발견되었고 ▲변사자중 간호원이 2명이나 끼여 있어 좀 더 쉬운 방법을 택할 수 있는데도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점 등도 의문점중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홍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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