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은 수도로 적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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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911년 신해혁명 이후, 국민당정부는 수도를 남경으로 정했다. 유명한 사학자 전목교수는 일찍이 국민정부가 수도를 남경에 정한 것이 큰 잘못이었다고 논한 적이 있다. 남경처럼 나약한 곳에서는 중국을 통치할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고 기억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북경의 거친 자연환경이 오히려 중국의 수도로 적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교수의 주장을 시인이나 하듯, 1949년에 모택동이 다시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북경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것이 자전거다. 미국이 자동차의 나라라면 중국은 자전거의 나라, 북경은 자전거의 도시다. 무수히 많은 은륜이 넓은 거리를 꽉 메우고 있다. 지형이 평탄하기 때문에 자전거가 이상적인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의 자전거 탄 모습이 상쾌하다. 원래 중국의 여성들은 그들의 몸매를 적당히 노출시키기를 좋아 하는데, 미니스커트의 시대에 각선미를 자랑하기에는 자전거가 안성맞춤인 것 같다. 습기 없는 초여름의 맑은 아침에, 은륜의 파도가 넘치는 거리의 광경은 마치 매스게임의 율동을 보듯 상쾌한 느낌을 준다.
북경의 명물중의 하나가 「호동」이라고 불리는 시민 주거지다. 우리의 달동네와 비슷한좁고 구불구불한 길, 기름에 튀긴 호빵을 파는 가게, 「주대소」라는 간판을 단 「국영」여인숙, 화분이 옹기종기 놓여있는 나즈막한 들창. 아름답다고는 할수 없으나 평화스러운 분위기다. 호동은 우리나라의 「통」과 비슷한 주거의 블록인 것 같은데, 군데군데 「백합호동」「장미호동」「앵도호동」등 이름만이라도 아름답게 붙이자는 중국인의 성품이 엿보인다.
정양문부근의 호동을 지나서 잠시 유명한 북경의 「유리창」엘 가본다. 「유리창」은 옛날부터 문방구·장식물·서화등 중국산 선물을 파는 상가인데, 조선시대에도 중국에 가는 우리사신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유리창」이 어떤 곳인가를 내가 안것은 중학시절에 박연암의 『홍덕보묘지』(홍덕보는 홍대용으로 당시 실학파의 거두)를 읽었을 때부터 였는데, 오늘에 와서도 그 옛모습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여간 기쁘지 않다. 거기를 가기전에 나는 혹 「왕양명전집」과 「임천(왕안석)선생문집」이 있으면 한질씩 사리라 작정했으나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뜻밖으로 그 기대가 실현됐다. 어떤 고서점에 들르니, 내가 올 것을 기다리고나 있었다는듯이 「양명전서」(십책)와「왕림천전집」(십이책)이 있지 않은가. 활자도 선명하고 책모양도 아담해서 도합 30달러를 주고 얼른 사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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