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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돌 던지면 안 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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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 사회는 솔직히 정신없다. 난리 난 듯 떠들던 사건도 대략 열흘 이내에 잊혀진다. 또 다른 큰일이 터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밀려가는 삶은 허전하다. 그래서 가끔씩은 억지로라도 뒤를 돌아보고 싶다.

몇 가지가 떠오른다. 우선 보건복지부 기자들이 지난달 16일 낸 성명서다. 대상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TV에 나와 "기자실에서 몇몇 기자들이 딱 죽치고 앉아 보도자료를 가공하고, 담합하고…"라고 말하자 일선 기자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성명은 "노 대통령은 발언 경위를 설명한 뒤 발언 전문을 즉각 철회하고 사과하라"고 돼 있다.

한마디로 슬프다. "이거야말로 민주주의 아니냐"라고 강변한다면 당신은 물색없는 사람이다. 보건복지부 출입 기자들의 심경은 이해가 간다. 단지 대통령의 권위가 이 지경이 된 현실이 기가 막힌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대체 이렇게 된 이유가 뭔가?"

두 번째 떠오르는 건 석궁 테러다. 전직 대학교수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고등법원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쐈다. 있어선 안 되지만 사실은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 주목할 건 그 다음이다. 인터넷에선 "오죽하면 그랬을까. 그 교수를 이해할 수 있다" "판사들이 얼마나 고압적이냐"라며 교수를 두둔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그걸 보며 이용훈 대법원장이 생각났다. 이 대법원장은 지난해 말 일선 법원을 돌며 판사들을 격려했다. 거기까진 좋은데 검사와 변호사를 끌어들여 망신을 줬다. "변호사가 만든 서류는 사람을 속여 먹으려는 것"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고 했다. 혹시 검찰에 불려가 봤거나 변호사를 접촉한 경험이 있다면 그 말에 동조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검사와 변호사는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대법원장이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검사와 변호사가 신뢰받지 못하는 건 모두 안다. 그러나 판사라고 해서 별로 나을 것도 없다는게 국민 감정임을 알아야 한다.

며칠 전까지 사법부는 시끄러웠다. 유신시대에 '긴급 조치법'으로 생사람을 단죄했던 과거가 공개돼서다. 대법관을 포함한 현직 판사들의 이름도 밝혀졌다. 당사자들로선 억울하다고 주장할 대목도 있다. 따지고 보면 이용훈 대법원장도 군사정권 때 고시를 보고 판사가 됐다. 그러니 "나는 당시에 재수가 없어 그런 재판을 맡았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게 억지라고만은 할 수 없다.

영어 속담에 '유리로 만든 집에서 사는 사람은 돌을 던지면 안 된다(Those who are living in the glass houses shouldn't throw stones)'는 말이 있다. 필경 남들도 돌을 되던질 것이고, 그럼 유리집은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질곡 많았던 우리 사회에서 남에게 마구 돌을 던져도 될 만큼 순백한 사람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특정 시대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한때는 순수하고 깨끗했지만 지위가 올라가고 세월이 흐르면 변하는게 인간인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은 걸핏하면 기득권층을 공박했다. 그들 스스로 기득권층이 된 뒤 과연 청교도처럼 생활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 나에게도 "당신은 칼럼에서 남을 비판하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렇다. 나도 남을 비판한다. 그게 언론의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정치인.기업인.언론인.법조인.의사.교사, 그 누구든 상관없다.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권위를 지켜주자.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할 때일수록 예의를 더 지키자.

인간은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죄인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조금씩만 더 겸손해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살기 좋을 것이다.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