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다녀보고 북에 염증/서울온 이창수와 일문일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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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다른사람 잠든틈에 기차탈출
4일 자유대한의 품에 안긴 북한 유도선수 이창수씨(24)는 『북한의 체육인들은 비교적 해외에 자주 나가는 편이어서 많은 것을 보기때문에 북한의 현체제에 대한 불만을 은연중에 서로 털어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귀순동기는.
▲84년부터 몇차례 국제대회에 참가하면서 외국인들과의 접촉을 통해 북한선수들은 항상 감시와 통제속에서 지내왔다는 것을 알게됐다.
또한 조선(북한)이 항상 「제일 살기좋은 곳」이라는 교육을 받아왔으나 한국의 유도선수들이 자유롭고 풍족한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의 실정을 간접적으로 파악하게 됐다.
­북한의 공훈체육인이라는데.
▲명예만 있을뿐 별다른 특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도 평양에 돌아가면 집을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믿기지 않았다.
­이번 귀순을 위해 어느곳에 협조를 구했는가.
▲스페인에서 대한민국 총영사에게 귀순에 관한 문의를 했으나 프랑스 파리에가서 소식을 기다리라는 답변을 듣고 선수단과 함께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가던중 다른선수들이 술을 마시고 잠든 틈을 이용,파리부근에서 뛰어내려 한국 공관을 찾았다.
­집안사정은 어떤가.
▲교포총국의 지도원으로 근무하던 아버지가 상부의 텔리비전수상기 선물요구를 거절해 직장을 빼앗기고 평양시내 화물자동차 사업소에서 「혁명화 노동」이라는 무임 강제노역을 해왔다. 다른가족들도 그동안 다디던 직장에서 추방되었다.
◎귀순 이창수는 누구인가/북한 유도 간판스타… 대표 7년째/17일 남북 체육회담 악재 우려도
○…북한 운동선수로는 처음으로 한국에 망명한 이창수(24)는 지난해말 은퇴,지도원으로 활약중인 황재길(31)과 함께 북한유도를 이끌어온 쌍두마차. 85년 고베(신호) 유니버시아드에 첫모습을 드러낸 이래 줄곧 국제무대에 참가,북한 유도의 성가를 떨쳐왔다.
89 세계 유도선수권대회(유고·베오그라드) 동메달,90 북경 아시안게임 은메달은 그의 주요 국제대회 입상경력. 이 공적을 인정받아 현재 「공훈체육인」으로 부동의 위치를 굳혀오고 있다.
지난달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91 세계유도선수권대회(25∼28일)는 북한 유도계에서 차지하는 그의 비중을 보여주는 확인무대격.
한국이 이 대회에 무려 15명의 선수를 파견시킨데 비해 대회 개막에 임박해 파견한 단3명의 북한선수중 이가 포함된 점이나 그가 대회기간중 줄곧 주장역할을 맡았던 점 등으로 미뤄 북한에서의 그의 위치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창수는 엑스포호텔에서 얼굴이 익은 남측 임원과 마주할라치면 깍듯이 예의를 갖췄으며 한국선수들과도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는 등 격의없는 모습이었으나 왠지 불안하고 풀죽은 모습이었다는게 김상철 전대표팀 감독의 귀띔.
국제심판 자격으로 이곳에 와있던 김감독에 따르면 이는 종전과는 달리 김감독에게 다가와 북한에서의 선수생활에 대한 회의를 넌지시 비췄는가 하면 대회기간내내 뭔가 하고싶은 얘기를 감추는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이다.
또 28일 폐막식장에서는 이가 한국선수들중 비교적 안면이 많은 김건수 선수(26·쌍용)에게 다가와 망명가능성을 문의하기도 했고 바르셀로나 한국 총영사관에 네차례나 전화로 망명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알려져 일찍부터 망명의사를 갖고 있었으나 결행시기를 늦춰온 것으로 보인다.
1m72㎝에 딱벌어진 체격의 이는 대표경력이 7년째로 업어치기가 주특기인 베테랑급. 85년 고베U대회 이후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선수단과 자주 만난 경험을 갖고있어 북한 유도선수중 한국을 가장 잘아는 선수로 꼽힌다. 71㎏급의 한국라이벌은 정훈(체과대)·전만배(상무) 등을 꼽을정도.
이에 따라 92 바르셀로나올림픽을 1년남짓 앞둔 국내 유도계는 그의 망명을 크게 반기고 있는 눈치. 그러나 체육계 일각에서는 이 사건이 오는 17일 재개되는 남북 체육회담에 악재로 작용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않다.<전종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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