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수용이 능사 아니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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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일 보도된 대전신생원 수용자들의 처참한 실태는 우리나라 정신보건사업이 어느 수준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다.
대전신생원의 경우는 그 실태가 우연히 드러난 것일뿐 실은 전국 대부분의 정신질환자 요양소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 상황에 있다는 것이 정신보건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식으로 인가된 정신요양소들의 실태가 이러할때 수적으로는 훨씬 더 많은 무인가 요양소들의 실태가 어떠할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따금 TV나 신문에 의해 보도되곤 하는 정신질환자들의 수용모습은 문자 그대로 생지옥이라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매번 사건이 일어난 그때만 일시적으로 사회적 관심을 끌다가 이내 흐지부지되어 버린다.
당국의 이에 대한 변명은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예산부족도 그 한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부족에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일반 국민은 물론 당국조차도 정신질환을 불치의 병으로 보고,진료보다는 수용이나 요양이라는 이름아래 사실상 환자를 영구감금하는 제도를 방치내지 조장하고 있다는데 있다는 것이 정신보건의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들에 따르면 정신질환도 그 80%는 치유될 수 있다. 특히 초기에 적절한 진단과 진료를 받는다면 완전한 정상인으로 복귀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정신질환은 불치라는 그릇된 인식과 문제를 손쉽게 당장 처리하려는 편의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수용위주의 행정을 펴다보니 병을 만성화시켜 개인적·국가적 부담을 오히려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해결의 방향은 무조건 예산을 들여 수용소시설을 늘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을 확대하는데 있다. 물론 수용시설이 전혀 불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고 치유의 가능성이 없는 중증환자를 위해선 전문적인 요양소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문제는 당국마저도 정신질환자에 대해서는 중증이냐 아니냐를 가릴 것 없이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있는 것이다.
대전 신생원의 문제가 사회에 표현화된 것은 우리나라의 정신보건사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는 좋은 계기다. 이곳에서 발생한 인권유린이나 공금유용 등을 정확히 조사해 처벌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나 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엇비슷한 환경에 있는 다른 정신요양소에 대해서도 이 기회에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입·퇴원심사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입원때에는 반드시 요양소와 관계없는 전문의의 사전진단이 있도록 하고 최소 1개월에 한번씩 퇴원심사를 받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치료될 수 있는 환자가 만성환자가 되어버리는 비극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정부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이번 대전신생원사건은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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