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유전자 정보 담는 새 면허증 도입 법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 연방정부가 2008년 시행 예정인 리얼 ID 카드의 한 예. [폭스뉴스 제공]

미국이 내년 6월부터 전면 개편되는 새 운전면허증을 놓고 시끌벅적하다. 새 제도를 시행도 해보기 전에 의회에서 폐기 움직임이 일고 있다.

새 면허증은 연방정부가 정한 통일된 기준에 따라 발급된다는 것이 지금과 가장 다르다. 지금은 거주지 주 정부가 제각각 발급하기 때문에 모양도, 담긴 내용도 다 다르다. 새 면허증에는 개인 신상 정보가 자세히 기록되며 지문까지 담은 칩이 내장될 수도 있다. 또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와 유사한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도 새롭게 들어간다. 면허증을 분실하거나 도용당할 경우 사생활 침해는 물론 경제적 피해도 야기될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이 지적되자 연방의회에서 이 법을 다시 폐기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니얼 아카카(민주).존 수누누(공화) 상원의원은 최근 이 법을 없애고, 각 주가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새로 만들자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다. 폭스뉴스는 "의회가 새 법을 폐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안보 강화 위해 도입=새 면허증에 관한 법(Real ID Act)은 2005년 의회를 통과했다. 이 법에 따라 미국 면허증 소지자는 내년 5월까지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 이 법을 만든 목적은 테러범이나 불법 체류자가 면허증을 취득하는 걸 막고, 면허증 소지자에 대한 정보를 연방정부가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법에 대해 그동안 '시민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경찰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지난달 23일 메인주 의회는 이 법을 거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같은 달 31일 몬태나주 하원도 주 정부에 이 법을 수용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4일 AP통신에 따르면 조지아.와이오밍.뉴멕시코.버몬트.워싱턴 주 의회가 비슷한 결의안이나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애리조나.하와이.미주리.매사추세츠.뉴햄프셔.오클라호마.유타주 등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AP통신은 "새 면허증 제도에 대한 반발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새 법에 따르면 주 정부가 내년 5월까지 새 면허증 제도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그 주의 주민은 면허증을 신분증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면허증을 보여주고 비행기나 열차를 탈 수 없으며, 은행 계좌도 열 수 없고, 연방정부 청사도 출입할 수 없게 된다. 이때엔 여권이나 다른 신분증을 갖고 다녀야 불편을 면할 수 있다.

새 제도는 불편함도 야기할 소지가 많다. 새 면허증 신청은 인터넷이나 우편으로 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사람은 출생증명서 등 한층 늘어난 서류를 들고 차량등록국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