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경제관료 출신들 줄줄이 여당 떠나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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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한나라당' '건설족(建設族)' '편할 때만 시장 원리를 찾는다'….

열린우리당 내 이념 갈등 와중에 경제통들은 이런 비난을 들었다. 주로 고위 경제 관료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이 대상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요즘 '열린우리당 호'에서 뛰어내리려는 대열 속에 있다. 이계안(탈당).정덕구(비례대표 의원직 사퇴) 의원처럼 이미 내린 사람도 있다. 강봉균 전 정책위의장처럼 하선을 진두지휘하는 이도 있다. 이들은 "이념 과잉에 젖어 있는 열린우리당에선 더 이상 시장경제가 안 통한다"거나 "경제문제를 경제논리보다 이념.정치논리로 풀려 한다"고 하선 이유를 들고 있다.

◆떠나는 의원들=2004년 4월 총선 당시만 해도 이들은 집권당의 힘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경제관료와 스타급 CEO의 대거 총선 차출은 집권당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또 이들은 열린우리당의 '따뜻한 시장경제'를 이룰 주역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불과 3년여 만에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나고 있다.

재경부 장관을 지낸 강봉균 전 정책위의장은 "탈당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그는 김한길 전 원내대표와 함께 집단 탈당 움직임의 중심에 서 있다. 강 전 정책위의장은 "원내 교섭단체(의원 20명 이상)를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한다. 정보통신부 차관 출신의 변재일 의원도 공개적으로 탈당 의사를 밝혔다. 홍재형 의원도 비슷한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경제 관료 출신 중엔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김진표 의원 정도만 조용한 상태다. 우제창 의원 등 교수 출신 경제학자들도 들썩이고 있다. 미국 라이스대 교수를 지낸 채수찬 의원은 2.14 전당대회 이후 정동영 전 의장과 함께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난 정책을 얘기하는데 그쪽은 이념을 얘기한다"=떠나는 이들은 "신뢰받지 못했다" "좌절했다"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한다. 실제 이들은 출자총액제한제,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부동산 정책 등 경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좌절한 일이 많았다. 최근 1.11 부동산대책 마련 과정에선 "당이 일찍 이런 대책을 내놓았어야 하는데 경제통들 때문에 늦어서 당이 망가졌다"는 비난도 들었다. 이들은 "정치가 경제의 상위 개념"(정덕구 의원)이라거나 "난 정책을 얘기하는 데 그쪽은 이념을 얘기한다"(강 전 정책위의장)고 이런 기류를 비판했다. 경제 문제조차 경제가 아닌 정치 논리로 푼다는 것이다.

이들은 당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적 접근도 걱정했다. 강 전 정책위의장은 "정책을 채택할 땐 신중하게, 한 건 하는 식으로 해선 안 된다고 여러 차례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며 "주택 공급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건설업자의 편을 든다'는 얘기가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인천대 경제학과 조전혁 교수는 "시장경제에 대한 원칙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여당 분위기 속에서 버티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침몰하는 여당에 있다간 경제전문가란 명망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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