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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서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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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도시들이 있다. 예술가들이 꿈꾸고 예술의 모티브가 되는 도시다. 영화는 이런 도시들의 매력을 십분 활용한다. 배경으로 삼아 그 아름다움을 전시하고 이미지를 빌려오기도 한다. 반대로 영화에 나와 유명해진 도시들도 있다.

뉴욕은 현대 영화가 열렬히 사랑하는 도시다. 우디 앨런처럼 뉴욕에 살면서 뉴욕을 평생의 테마로 삼는 감독까지 있다. 그에게 뉴요커란 강박증에 시달리는 현대 지식인의 전형이다. 숱한 영화에 나온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센트럴 파크 아이스 링크('세렌디피티')는 로맨스의 명소다. TV 시트콤 '섹스 앤드 시티'는 전 세계 젊은 여성들에게 '뉴욕병'을 불 지폈다. 가장 트렌디한 삶의 방식으로서 '뉴욕 스타일'을 동경하게 만든 것이다.

로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는 '로마의 휴일'만 한 것이 없다. '프라하의 봄'과 '비포 선 라이즈'는 프라하와 빈으로 가는 배낭 여행객을 쏟아냈다. 런던의 벼룩시장인 노팅 힐을 관광 명소로 만든 것도 영화 '노팅 힐'이다. 실제 런던은 최근 인기 촬영지로 상종가다. 우디 앨런마저 맨해튼을 떠나 런던에서 세 편의 영화를 찍어 화제가 됐다. 때마침 영국 배우들의 맹활약이 겹쳐져 '제2의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란 수사까지 나왔다.

그러나 문화와 예술의 도시라면 파리를 따를 곳이 없다. 일찌감치 자유와 예술의 동의어가 된 도시다. 개봉 중인 '사랑해, 파리'는 이런 파리에 대해 세계적 감독 18명이 애정을 고백한 옴니버스 영화다. 파리를 열여덟 구역으로 나누고 그 특성에 맞는 5분짜리 멜로를 찍었다. 구스 반 산트는 동성애자가 많은 마레 지구에서 게이 청년을 통해 소통을 이야기한다. 윌터 살레스는 고급 주택가인 16구역을 배경으로 계층 문제를 건드린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파리 여행이 일생의 꿈인 미국 주부 얘기다. 막상 여행이 외롭기만 한 그녀가 공원에 앉았다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사랑해 파리"라며 미소 짓는 것이 엔딩이다.

서울은 어떤가. 부지런히 환골탈태 중이지만 아직도 문화 이미지는 부족하다. 이용의 '서울'과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 같은 옛 노래가 있지만 관제 냄새가 짙다. 이참에 '사랑해, 파리'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어떤가. 기라성 같은 한국 감독들이 서울을 영화로 재발견한다면, 그래서 세계인이 '사랑해, 서울'이라는 창으로 이 도시를 새롭게 보게 된다면.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