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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조각'은 억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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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국 간 합의문이 그렇게 돼 있다고 한다. 알아보니 수입 대상이 '뼈를 발라낸 살코기'로 돼 있다. 우리 측 요구에 의해 이런 문구가 들어갔다. 광우병 우려를 차단하겠다는 의도였을 게다. 공무원이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국민의 보건을 위해 이렇게 투철한 자세를 보인 건 칭찬받을 일이다. 그런데 지금 한.미 간에 벌어지는 사태는 이런 취지를 넘어선 것이다.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 한 마리가 발견됐다. 바로 수입이 중단됐다. 지금 한국의 높디높은 문턱을 넘으려는 쇠고기는 광우병 소가 발견되고 6개월 이상 지난 뒤 태어난 소를 도축한 것이다. 감염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역시 우리 협상팀이 애쓴 결과다. 그런 고기를 들여오면서 손톱보다 작은 뼛조각을 문제 삼아 수입을 금지한 건 '과잉 수비'다.

광우병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모르고 하는 헛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 위험성은 잘 알고 있다. 강문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장은 지난해 12월 "가로.세로 몇 ㎜에 두께가 1㎜ 정도여서 X선에도 검출되지 않은 뼛조각들은 갈비뼈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라면 광우병 우려는 붙들어 매도 괜찮다고 말한다.

같은 때 수입을 중단했던 일본도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7월부터 다시 들여오고 있다. 일본은 뼈 있는 고기도 허용하고 있다. 일본의 위생 관념이 우리보다 약해 뼈까지 수입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내 200만 한인은 오늘도 LA갈비와 사골을 즐긴다. 미국인은 여전히 T본 스테이크와 햄버거를 좋아한다. 그들이 축산 농가들의 어려움을 걱정해 목숨을 걸고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일수록 위생 기준이 엄격하다. 일본에서도 가끔 식품 파동이 나지만 우리에 비해서는 약과다. 미국의 먹거리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식품의약국(FDA)은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관청 중 하나다. 뼛조각 문제를 정부가 국민 위생을 중시하는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명분이 다른 경우엔 별로 강조되지 않는다.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수입되는 그 많은 먹거리에 그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소리는 별로 듣지 못했다.

미국 관리들은 지금 잔뜩 화가 나 있다. 농무장관의 비판에 이어 상원의원 11명은 이태식 주미 대사를 불러 다그치기도 했다. 여기에선 미국에 수입된 현대차 한 대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같은 배에 실려온 차를 몽땅 한국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자유무역협정(FTA)의 미국 측 협상 대표인 웬디 커틀러는 한국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미국과의 FTA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얼마나 급했으면 전문가가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엄포를 놓았을까. FTA는 상호 이익을 위해 맺는 것이지 미국이 한국을 위해 베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쇠고기가 막혀 있던 지난 3년간 호주는 입이 쩍 벌어졌다. 한국 수입 쇠고기 시장의 4분의 3을 장악한 것이다. 그전에 미국이 갖고 있던 시장점유율이다. 우리의 무역 상대로 볼 때 호주의 비중은 미국에 비해 아주 작다. 이런 현실에서 호주에만 혜택을 주는 건 현명치 못하다. 국익에도 어긋날 수 있다.

국내 쇠고기 값은 서방 선진국의 4~5배에 이른다. 웬만한 사람들은 쉽게 사 먹을 엄두를 못 낸다. 미국산과 호주산이 서로 경쟁해야 국내 소비자가 덕을 볼 수 있다. 한우는 '횡성 한우'와 같은 특별한 마케팅으로 계속 경쟁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

심상복 국제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