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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부·건교부 또 엇박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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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책 발표 하루 만에 같은 사안을 놓고 부처별로 말이 엇갈리는 등 '1.31 부동산 정책'이 혼선을 빚고 있다.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은 1일 "비축형 임대주택은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매각하지만 분양주택이 부족해 집값이 급등하면 임대기간(10년) 중에도 매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날 "비축용 임대아파트는 임대기간 안에는 매각하지 않는다"는 서종대 건설교통부 주거복지본부장의 발언을 뒤집는 말이다. '1.31 정책'의 주무 부처인 재경부와 건교부가 같은 사안에 엇갈린 견해를 내놓은 것이다.

임대주택 확대를 골자로 한 이번 정책이 현실성이 떨어지고 곳곳에 허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주택 수요 억제를 위한 주택담보대출 규제 방안도 중도금 대출을 포함한 집단대출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없어 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

대신경제연구소 한태욱 실장은 "충분한 검토와 부처 간에 치밀한 조율을 거치지 않은 채 1.31 대책이 뭔가에 쫓기듯 급하게 만들어진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예전에 비해 거친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대통령 의중 좇는 정부 정책=부동산 정책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우왕좌왕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주택 보유세와 양도세의 상향 조정, 재건축 규제 강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건교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여러 번 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강조했지만 정부는 국민임대주택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그 이상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1.31 정책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책도 연초부터 거듭된 노무현 대통령의 '주거 개념이 소유에서 거주로 옮겨가야 한다'는 발언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집값을 잡기 위해 뒷전에 밀렸다가 최근 집값이 안정될 기미를 보이자 서둘러 임대주택 강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대통령 의지에 정책이 좌지우지되다 보니 부처별로, 담당자별로 손발이 안 맞는 경우가 잦다. 추병직 전 건교부 장관은 단독으로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가 경제부총리 주재의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사과하기도 했다. 올해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주택 후분양제와 관련, 건교부는 "변화 없다"고 밝혔으나 재경부는 연기 가능성을 시사해 혼선을 빚었다. 후분양제는 결국 당정 협의를 거쳐 1년 연기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청와대나 여론에 떠밀려 정책을 만들다 보니 과거 경제부처와 달리 눈치 보기가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실성 부족한 임대주택 확대=정부는 50만 가구의 비축용 임대아파트를 짓는 데 국민연금 등 공공자금과 생명보험사를 포함한 민간자본 90조원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건교부는 해마다 200만 평씩 모두 2000만 평의 땅을 새로 찾아야 한다. 하지만 국민임대주택 사업의 진행 상황을 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정부는 2012년까지 국민임대주택 100만 호를 건설키로 하고 지난해까지 39만 가구를 분양키로 했지만 실제 분양은 35만5000가구에 그쳤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실제 착공 물량도 16만여 가구 남짓하다. 광명 소하, 군포, 시흥 장현 등은 주민 반대로 사업승인을 받은 지 3년이 지나도록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건교부 국민임대주택건설기획단 관계자는 "그나마 지금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택지 찾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특히 2012년까지였던 사업 시한이 2017년으로 연장돼 더욱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건설산업연구원 백성준 박사는 "정부 의욕이 지나친 측면이 있다"며 "분양 물량을 늘리기 위한 신도시 부지와 국민임대단지 부지도 구하기 어려운데 비축용 임대주택은 어디에 지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임대사업 구멍에 세금 투입= 공공 부동산 펀드가 비축용 임대아파트 사업을 추진하면 연간 5000억원, 모두 6조5000억원의 손실이 생길 것으로 정부는 추정했다. 이 부족분만큼 재정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 지원이 훨씬 커질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임대주택을 통해 생기는 수익은 한 채당 임대보증금(2500만원)의 운용수익과 임대료(월 52만원) 등 연간 780만원 정도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연금 등 채권자에게 연 6% 이자를 보장하면 한 채당 1080만원의 수익이 보장돼야 한다. 따라서 재정 지원을 통해 보전돼야 할 부족분은 한 채당 300만원이다. 결국 13년 동안 50만 가구에 재정 지원을 한다면 그 규모는 8조원을 웃돌게 된다. 만약 임대주택이 빈집으로 남거나 매각 가격이 정부 기대에 못 미치면 부담은 더 커진다. 국민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국민임대주택 사업에서도 상당한 재정 손실이 날 게 분명하다. 정부는 현재 국민임대의 임대료를 낮추기 위해 건설 재원의 20%를 재정에서, 40%를 국민주택기금에서 지원해 준다. 하지만 여전히 지원액이 부족해 주공은 한 채당 3200만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 국민임대주택을 많이 지으면 지을수록 주공의 손실이 악화되는 구조다. 주공의 경영이 부실해지면 결국 국민 세금인 재정으로 메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준현.최준호.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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