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보면 그 주인이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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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사는 모습은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구두 수선공의 교훈

뉴스위크‘구두를 보면 그 주인이 보입니다’. 손으로 만든 티가 역력한 현판이었다. 낡은 구두 상자 뚜껑 위에 검은색 구두 염색제로 글씨를 쓴 이 현판은 피츠버그 북쪽 외곽의 전찻길 옆에 있던 조의 구두 수선점 창문에 똑바로 세워져 있었다.

당시 열두 살이었던 나는 순진하게도 그 문구가 조의 독창적인 생각인 줄 알았다. 또 그렇게 지혜로운 문구로 거듭난 구두 염색제는 이 세상에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조의 간판 문구를 보고 나자 착실하게 일하는 아버지를 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확연히 구분되기 시작했다. 구두는 그런 속내를 분명히 드러내 주었다. 또 좋은 구두를 신고도 깨끗이 닦는 법이 없던 반 친구들을 생각할 때, 그 역시 그 아이들의 됨됨이를 말해주었다.

목사였던 우리 아버지는 검은색 정장 구두 두 켤레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 구두들을 자주 닦았다. 한 번에 한 짝씩 서재에 있는 히코리 나무 의자 위에 올려놓고 광을 냈다. 집에서는 슬리퍼 대신 모카신을 신었는데, 그 역시 광이 나지는 않았지만 흠 하나 없이 깨끗했다.

일요일 아침이면 교회에 꼬박꼬박 나오는 사람들의 구두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구두와 성격 간에 유사성을 발견했다. 매번 모자를 바꿔 쓰는 아주머니들은 구두도 모자에 어울리는 종류로 여러 켤레가 있었다. 그들은 대개 까다로웠고, 약간 경박하기도 했다.

또 퇴직한 우편배달부 아저씨는 오랫동안 우편물을 배달할 때 신었던 구두를 신고 교회에 왔다. 그 구두를 신고 일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기 때문인 듯하다.

할머니의 생일축하 카드를 기다리는 아이들이나 하루 종일 우편집배원 말고는 사람 구경을 못하던 과부 아주머니들에게 그 우편집배원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그런가 하면 변호사 아저씨의 구두는 새로 산 그의 뷰익 자동차만큼 번쩍거렸다. 법정에서는 그 자신이 그만큼 빛나겠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우리 집에서 구두 수선 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꼭 조와 먼저 상의했다. “안녕하세요, 조.” 어머니는 말했다. “이 구두 좀 봐주실래요? 전문가 의견이 필요해요.” 조는 거의 언제나 구두를 고쳐 신으라고 권했다.

구두가 아이들 발에 맞지 않을 정도로 작아졌을 때는 예외였다. 그럴 때 조는 진심으로 이렇게 말했다. “다섯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데는 저도 어쩔 도리가 없네요.”

조의 가게에 가기를 즐겼다. 그곳은 어른들의 장소였다. 소란스럽고, 위험하고, 자극적인 냄새로 가득 차 있었으며, 라디오에서는 종종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야구단의 경기 중계가 흘러나왔다.

조의 재봉기는 밝은 빨간색 바탕에 초록색 줄무늬가 칠해졌다. 조가 낡은 갑피 밑에 새 가죽 창을 놓고 천천히 돌려가며 박을 때면 재봉기는 쿵쿵 울리는 소리를 내며 윙윙 돌았다. 낡은 구두가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구두닦이 기계를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든든해지고 기운이 났다.

새 가죽과 바나나 기름이 들어간 접착제, 기계 기름과 가죽 창에 칠하는 약의 냄새가 좋았다. 벽에는 수선을 마친 구두 수십 켤레가 꼬리표 달린 봉투에 담긴 채 주인이 찾아가기를 기다렸다. 조는 완벽주의자였다.

구두를 신게 될 손님들만큼이나 자신의 작품에 자부심을 가졌다. 수선된 구두를 손님에게 내놓을 때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 보세요! 꼭 새것 같죠?”

조의 깔끔한 성격과 장인다운 솜씨를 존경했다. 요즘은 조 같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한 동네에 적어도 한 명은 있다. 그들 대다수는 조처럼 손님이 잠깐 앉아 기다릴 여유만 있다면 구두를 닦아주기까지 한다.

조는 내가 대학에 입학한 후 다른 동네로 가게를 옮겼다. 내가 집에 돌아갔을 때 조는 이미 그곳을 떠났고,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 솔직히 나는 요즘 이용하는 구두 수선점 주인에게 그다지 돈벌이가 되는 손님은 아니다. 신다가 낡으면 버리는 테니스화나 달리기용 운동화를 많이 신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구두 다섯 켤레를 보유한다. 그중 세 켤레는 수선했고, 모두 15년 이상 내 신발장 안에 있던 신발들이다.

그 신발들은 아주 잘 만들어졌고 유행을 타지 않는다. 검은색 정장 구두와 갈색 코도반 가죽 구두, 그리고 캐주얼화. 흰색 사슴 가죽 구두는 너무 낡아 어지간해서는 신을 엄두가 안 난다.

그러나 1년에 한두 번, 아주 무더운 날 그 신발을 꺼내 신는다. 옛 친구들에게는 한바탕 법석 떨 거리를, 손자들에게는 배꼽 잡고 웃을 일을 만들어주고 싶어서다.

그럼 내 구두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해줄까. 한번 마음에 드는 신발을 발견하면 쉽게 버리지 않으며, 품질을 중요시하는 데다, 구입할 가치가 있는 물건은 고쳐 쓸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힘든 노동과 그에 따르는 성취감을 중요시하고, 내가 자신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남들이 나를 인식한다는 사실을 잘 알며, 무엇보다 감상적인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준다.

내 구두들은 나 자신뿐 아니라 조가 어떤 사람인지도 많이 말해준다.

(필자는 플로리다주 오칼라에 산다.)

JOHN F. WALD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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