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식선생 총살 당했다/소 망명한 전 북한고위급 인사들 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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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한/평양함락 하루전 500여명과 함께/대동강변에 묻고 도주/두달뒤 파내 “유엔군이 죽였다”/김국후특파원 소서 41년만에 확인
민족주의자 고당 조만식선생은 6·25전쟁중 북한 인민군이 유엔군에 밀려 평양에서 후퇴하기 전날인 50년 10월18일 공산정권을 반대하던 민족계열인사와 치안사범등 5백여명과 함께 북한당국에 의해 총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북한에서 당·정고위직을 지내다 그후 숙청돼 소련등 해외로 탈출·망명한 인사들의 증언에 의해 40여년만에 드러났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는 조만식선생에 대해 ▲신탁통치반대 등을 이유로 46년 1월부터 연금생활에 들어간후 행방이 묘연해져 고령으로 자연사했거나 ▲6·25전쟁 전후 북한정권에 의해 처형됐을 것으로 추측돼 왔을뿐 그의 죽은 시기와 방법,동기와 배경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북한에서 외무성 부상등을 지내다 59년 소련으로 망명한 박길용박사(71·소 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등에 따르면 북한은 50년 6·25전쟁을 일으킨후 승승장구하다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고 국군과 유엔군의 평양입성이 눈앞에 다가오자 50년 10월 중순께 주요 정부기관을 평북(현재는 자강도) 강계로 옮기기로 최종 결정한 직후 형무소등에 수감한 정치범과 치안사범을 그곳까지 끌고 갈 수 없다고 판단,유엔군 평양입성 하루전인 10월18일 「특수가옥」에 연금시켜온 조만식선생(당시 68세)을 비롯,내무성 구치소(형무소)등에 가두었던 지식인·기독교인등 민족주의 계열인사와 치안사범 등을 집단 총살시킨후 대동강변에 구덩이를 파고 일부 시체를 가매장하고 일부는 그대로 둔채 후퇴했었다.
북한은 중공군의 6·25전쟁 참전으로 같은해 12월 초순 다시 평양을 탈환해 들어가 조만식선생 등의 시체를 파내 『전쟁을 도발한 이승만 괴뢰군이 평양을 쳐들어 오면서 조만식선생등 수 많은 민족지도자급 인사들을 죽인후 구덩이에 파묻고 퇴각했다』고 선전했으며 그후 북한 주민들은 조만식선생 등을 국군과 유엔군이 죽인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관계기사 3면>
◎기일몰라 생신날 추모/유족들
고당의 3남 조연흥씨(51·조선일보 총무국장)는 『60년대 중반 한 귀순자가 자료를 통해 북한에서 자신의 부하(군인)로부터 45년 10월15일쯤 아버지를 총살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으나 이번처럼 당시 북한의 고위관리가 아버지를 비롯,민족계열 인사등 5백여명을 학살한 시기·방법·동기와 배경 등을 명확히 밝힌 것은 처음으로 매우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조씨는 『그동안 아버지의 죽음이 명확치 않아 정확한 기일(설사 죽이지 않았더라도 살아 계신다면 1백9세가 넘었기 때문)을 정하지 못해 어머니(전선애·87)와 상의해 해마다 아버지의 생신일(2월1일)을 맞아 추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문제전문가 스칼라피노 교수와 함께 『한국공산주의 운동사』를 펴낸 이정식교수(미 펜실베이니아대)는 『일부 자료에 따르면 놀랄만한 용기와 끈기로 끝까지 신탁통치 등을 반대하던 고당은 소군정의 엄중한 감시하에 평양의 고려호텔에 연금된 이후 행방불명,한국전쟁 혹은 전쟁중에 공산정권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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