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문제 그대로 출제" SAT 응시생 항의 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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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달 27일 한국 등 전 세계에서 치러진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이 1년여 전 문제를 그대로 출제했다는 불만이 한국 수험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제기됐다. SAT 출제기관인 미국교육평가원(ETS)이 '문제 유출' 조사 방침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한국 학생들이 미국 유학 준비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이 같은 문제 유출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SAT의 문제은행식 출제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31일 SAT를 치른 수험생 등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실시된 1월 SAT 시험이 2005년 12월 시험과 거의 똑같은 문제를 출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시험 응시생들의 학부모들이 학교별로 대응책을 논의하는 한편 SAT시험 주관처인 미국 칼리지보드 측에 항의 e-메일을 발송하고 있다.

또 SAT 준비반으로 유명한 서울 시내 3개 학원에서 이번 시험을 앞두고 수강생들에게 2005년 12월 기출문제를 미리 제공, 이 학원들의 수강생만 높은 점수를 받게 됐다는 일부 학부모의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관련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특정 학생들이 문제를 미리 풀어봤다는 것은 시험 자체의 신뢰도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칼리지보드 측이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경우 시험 성적 자체를 취소하는 것을 비롯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이번 일로 한국 내 SAT 테스트 센터가 폐쇄되는 등 한국 학생들이 미 대학의 입학사정에서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민족사관고 국제반 학부모 모임도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을 통해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이지만 어떻게 결론이 나든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다 같이 노력하자"며 신중한 대응을 당부했다.

한편 30일(현지시간) 뉴욕 타임스는 ETS가 이번 SAT 시험에서 최소 1명 이상의 한국인 수험생이 시험일 이전에 일부 문제를 미리 확보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유출 범위를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ETS 관계자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는 서울에서만 제한적으로 일어난 상황으로 알고 있다"며 "사전 정보를 갖고 이번 시험에 응시한 학생들의 점수는 취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장영준(영문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이번 SAT 중복 출제 논란은 자칫 ETS 측이나 미국 언론으로부터 '문제 유출'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으나 이는 GRE나 토플 시험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것처럼 한번 풀어봤던 기출문제가 우연히 다시 출제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SAT의 문제은행식 출제 방식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기출문제를 공부하는 한국 유학 준비생들에게는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며 "미국의 시험 출제기관도 투자를 더 해서 문제 수를 대폭 늘리는 등 문제은행식 출제의 결점을 보완해 시험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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