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세금으로 중산층 주택까지 책임지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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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어제 또 부동산대책을 내놓았다. '주택시장 안정과 주거복지 향상을 위한 공공부문 역할 강화방안'이다. 1.11 부동산대책의 분양가 규제 강화로 민간의 주택 공급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우려되자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확대하고 분양주택 공급에도 공공이 나서겠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올해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7조원씩 100조원에 가까운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펀드는 국민연금 등 각종 기금으로 조성되며, 정부가 매년 5000억원의 재정을 지원하게 된다.

정부는 이 같은 임대주택 공급 확대로 월소득 300만원인 소득 6분위(총 10분위)까지 임대주택 입주가 가능해지며, 장기임대주택의 규모도 평균 30평으로 늘어난다고 밝혔다. 앞으로 중산층 주택까지 상당부분 공공이 책임지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국무조정실 산하에 택지 확보 태스크포스도 설치된다.

재정 대신 7조원의 펀드 조성을 통해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내용이지만, 투자한 기금의 수익성을 보장해 줘야 하기 때문에 결국은 국민의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재정 투입 대신 펀드 조성이라는 것은 단지 숫자놀음에 불과한 이야기인 셈이다. 이미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정부의 재정이 갈수록 악화될 것은 뻔한 일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복지에 정부가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40평대에 이르는 중산층 주택까지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야 하는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가능하면 민간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해 주택을 공급하고 정부는 최소한의 책임만 지자는 것이 최근의 세계적인 주택정책 트렌드다. 영국의 경우 1980년대 대처 정부 시절 공공임대주택을 대량 민영화했다.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관리의 어려움과 수요자의 외면 등으로 슬럼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등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는 민간시장은 꽁꽁 얼어붙도록 만들어 놓고 그 공백을 정부가 메우겠다고 나서고 있다. 주택정책은 아예 사회주의로 가겠다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