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길재 선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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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
어디서 몰려온 이 많은 바람들인가
무슨 소문들을 듣고
여기 금오산에 와서
이리저리 안개 속을 뒤지는가
산에 산다는 일은
바람의 떼에 갇혀서
물 소리를 내고
바람소리도 내는 일
금오산에는 세상을 떠난
바람소리가 살고 있느니
바람의 길이 보이느니

<2>
어느 해 겨울 해운사에 갔었지
금오산 허리춤에 매달린
무명주머니같이 늙은 절
눈에 묻힌 저녁 종소리를 밟고 갔었지
지금은 여름 저무는 금오산
채미정 처마 밑에서
옥조의 바람소리를 듣고 있지
세상의 티끌을 모두 뒤집어 쓰고
길재선생, 몸을 씻던 바람을
귀머거리로 듣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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