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주요 인사 경호 강화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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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해외 선진국들의 법관 경호 프로그램을 보자. 미국 연방대법관은 워싱턴DC 내에서는 경찰의 24시간 경호를 받고, 경계를 넘어서면 마셜(특별사법경찰) 당국의 경호를 받는다. 법관이나 법관의 가족이 위협 전화나 편지 등을 신고하면 마셜본부의 법원보안담당과 조사관이 이틀 동안 상황을 파악한 뒤 경호 여부를 결정한다. 일본은 중요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의 재판관들을 심리기간 중 특정 숙소에 합동 거주토록 하고 숙소 경비를 강화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고법 부장판사 피습 사건을 계기로 대법원이 19일 전국 법원장 회의를 개최해 '사법질서보호법'(가칭) 제정을 추진키로 한 게 고작이다. 이 법은 법관이나 검사 등을 상대로 한 보복 범죄를 가중 처벌하고, 재판 관련자에 대한 신변보호 프로그램과 신상정보 공개 제한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법관뿐 아니라 국가 주요 인사에 대한 경호대책을 체계화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비전통적 위협이 커지고 있고, 국내적으로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집단 간 이해관계의 상충과 대립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도 주요 인사에 대한 테러 가능성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공경호(公警護)에 대한 우리의 현실은 대통령에 대한 청와대 경호실의 임무가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반면 3부 요인, 헌법재판소장, 대통령선거 후보자 등 국가 주요 인사에 대한 공경호는 체계적으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대책으로 최근 국회에서 '요인경호법안'이 제출돼 있다. 이 법안에서 규정하는 국가 주요 인사에 대한 경찰의 체계적인 경호 프로그램이 시급히 확립.시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 역량을 갖고 있는 대통령경호실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대통령경호실은 이제 대통령 경호만을 위한 역량 집중 단계를 넘어 그들이 보유한 전문성과 노하우를 제공, 국가 주요 인사에 대한 경호안전관리대책의 총체적 로드맵 구축에 기여해야 한다.

특히 올해는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인 만큼 예비후보자와 주요 정당의 전당대회에서 대통령선거 후보로 선출된 자에 대한 경호대책이 시급하다. 지난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테러는 이러한 필요성을 절감케 한 사건이었다. 국가기관과 국회에서 공경호에 대한 논의와 대책 수립 노력뿐 아니라 공경호 대상 이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계 등의 주요 인사에 대한 민간 경호 프로그램 개발 또한 시급하다. 공경호 및 민간 경호 프로그램의 효율적 발전을 위해서는 경호.경비학계와 민간 경호업계의 협력이 필요하다. 학계는 선진국의 공경호와 민간 경호 시스템, 프로그램 및 교육과정 확립에 대한 연구 노력이 필요하다. 민간 경호.경비업계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전문적 소양과 자격을 갖춘 요원 양성과 보안서비스 제공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대통령경호실의 협조로 체계적인 공경호 및 민간 경호 프로그램 발전을 위한 노력이 전개된다면 경찰, 경호.경비 학계 및 민간 경호업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동시에 경호에 대한 인식 전환의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

날로 증가하는 폭력과 테러 위협에 노출된 국가 주요 인사와 정치.경제.사회.문화계 등의 민간 인사에 대한 신변보호는 국가와 사회의 경쟁력과 발전에 기여하는 가장 기초적인 사안임을 사회 전체가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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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 경호비서학부 교수
전 대통령경호실 경호이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