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를 사로잡은 스턴트 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5면

대형 모터사이클 세계 1위이자 미국의 전통 모터사이클인 할리데이비슨(이하 할리) 헬멧의 70% 이상은 한국의 KBC 제품이다.

헬멧 안쪽을 보면 'Manuctured by KBC'라는 라벨을 볼 수 있다. 이 회사 이주용(43.사진) 부사장은 1999년 할리 납품권을 따내 KBC를 연간 100만개 이상 헬멧을 판매하는 세계 4위권 업체로 키워냈다. 초등학교 때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로 이민간 그의 원래 꿈은 영화배우였다. 콜로라도주립대 졸업 후 할리우드 스타에 도전한 적도 있다. 그는 "5년 간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의 유명 바에서 연주를 하면서 모터사이클을 타는 단역 스턴트맨으로 영화에 출연했지만 할리우드의 벽은 너무 높았다"고 말했다.

배우의 꿈을 접고 93년 뉴욕에서 교포 서너 명과 함께 KBC 창업에 참가,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는 "처음엔 공장도 없이 헬멧 디자인만 들고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헬멧을 생산했다"며 "납기를 제때 맞춰 신뢰를 쌓았고 이후 인천에 공장을 인수하고 KBC 자체 브랜드를 키운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전했다.

할리 납품을 따낸 일화도 소개했다. 당시 미국 밀워키 할리 본사에는 하루에만 10여 명이 납품을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 이들 대부분은 말쑥한 양복 차림이었다. 그는 양복 대신 가죽 재킷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갔다. 그는 "들고 간 것은 헬멧 설계도와 시제품 서 너개, 사업 제안서 뿐이었지만 할리 특유의 자유롭고 개성이 강한 문화를 잘 이해한 것이 구매담당자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모터사이클에 푹 빠졌던 그는 지금도 로스앤젤레스 집에서 시내 지사까지 20㎞를 할리 '펫보이'와 일본 가와사키의 '닌자' 모터사이클로 출퇴근한다.

그의 항공사 마일리지는 100만 마일이 넘는다. 두 달에 한번 꼴로 서울 연구개발센터와 중국 칭따오(靑島)공장, 미국 지사를 왕복한다. 올해는 미국에 중저가 모터사이클 전문 의류를 출시할 계획이다. 또 다른 목표는 올해 녹음 작업을 끝내고 음반을 내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풀 문'이라는 이름의 록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형은 베인앤컴퍼니 이성용 사장이다.

김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