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충무로, 합작영화로 미국에 '레디 ~ 액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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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적어도 선댄스영화제에선 미국 영화라는 것이 정답이다. 한국의 나우필름과 미국의 복스3 필름이 합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미국에서 영어로 촬영해 미국 극영화 경쟁부문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재미동포 그레이스 리 감독의 '아메리칸 좀비'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iHQ가 투자하고 리 감독과 이인아 프로듀서의 리리필름스가 만들어 선댄스와 같은 기간에 열린 슬램댄스영화제의 극영화 경쟁부문에서 상영됐다.

이로써 한국이 미국과 손잡고 영화를 만들면 미국 영화로 인정받아 미국 관객을 만나는 시대가 활짝 열렸다.

# 충무로, 미국에 도전장을 내다

21일 오후 선댄스영화제가 열리는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의 라켓클럽 극장. 제프리 길모어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네버 포에버'를 소개했다. "이 영화는 여성의 욕망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국 독립영화의 큰 수확입니다." 이어 김 감독과 주연배우 하정우.베라 파미가.데이비드 맥기니스가 무대인사를 위해 단상에 오르자 600여 명의 관객이 박수로 화답했다. 한.미 합작 영화의 새 지평을 여는 순간이었다.

사실 연간 10조원 규모의 미국 영화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충무로의 오랜 숙원이었다. 그만큼 벽도 높았다. 예전에 눈에 띄는 성과로는 박중훈이 2002년 할리우드 영화 '찰리의 진실'에 출연하고,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2004년 미국에서 개봉해 관객 33만 명을 모은 정도였다. 지난해 한국영화의 북미 지역 수출액은 196만 달러(약 19억원)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충무로는 미국시장 진출 전략을 '현지화'로 전환했다. '네버 포에버'와 '아메리칸 좀비'는 현지화 프로젝트의 첫 결실이다. 장르는 각각 멜로 드라마와 호러물로 전혀 다르지만 제작 방식은 닮은 점이 많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감독에게 연출을 맡기고, 배우와 스태프는 거의 미국인을 썼다. 영화가 처음으로 선을 보인 곳도 모두 미국 영화제다.

# 미국적 콘텐트 - 차별과 소외

'네버 포에버'와 '아메리칸 좀비'는 철저히 미국적 콘텐트로 승부를 걸었다. 미국사회에서 여성.이민자.동성애자 등 소수 그룹이 느끼는 차별과 소외가 주제다.

'네버 포에버'는 한국계 변호사 앤드루(데이비드 맥기니스)와 결혼한 소피(베라 파미가)라는 여성의 욕망에 초점을 맞춘다. 둘은 아이 갖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불행히도 앤드루는 생식 불능이다. 그러자 소피는 불법 체류자로 막노동을 전전하는 지하(하정우)를 찾아가 거액을 제시하며 임신을 시켜달라고 제안한다. 영화에선 욕망하는 아내와 억압하는 남편으로 표현되는 여성 문제, 고소득 전문직과 가난한 노동자의 계급 문제, 백인과 아시아계의 인종 문제 등 사회적 이슈가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아메리칸 좀비'는 좀비(살아 움직이는 시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좀비를 직접 만나 인터뷰한다는 내용의 페이크(가짜) 다큐멘터리다. 여기서 좀비는 사회적 소수그룹을 상징한다. 좀비는 신체적인 조건에선 인간과 분명히 구분되지만 속 마음에서는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인간은 좀비를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영화는 날카로운 풍자로 인간들의 편견을 조롱한다. 슬램댄스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폭소가 끊이지 않았다.

두 영화는 일단 미국에서 소규모로 개봉한 뒤 차츰 상영관을 늘려갈 계획이다. 제작비 규모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본격적으로 경쟁하기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네버 포에버'는 300만 달러, '아메리칸 좀비'는 1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였다. 미국 기준으로는 초저예산 독립영화다. 그러나 제작진은 영화제 반응이 좋아 의외의 '대박'도 기대하고 있다. '네버 포에버'는 3월 말 국내 개봉할 예정이다. '아메리칸 좀비'는 일정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

파크시티(미국 유타주)=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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