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클로즈 업] 주말 향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1973년 군대 제대 후 돈을 벌기 위해 군산의 한국염전에서 염전 일을 시작했다. 그 후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염전 일을 하다 보니 어찌 생각하면 잠깐인 것도 같은데 벌써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가수나 배우는 20, 30년을 일한 기념으로 축하무대도 열지만 30년 동안 염전에서 일한 나에게 축하무대는 없다. 올 한해 비만 많이 오지 않았다면 그나마 좋았을 것을. 30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여름에 이렇게 비가 많이 온 적은 올해가 처음이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지만 그래도 소금값이 지난해보다 세배 넘게 오른 때문에 집안 살림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쉽게 말해 "소금값이 금값이다"란 옛말이 재현된 셈이다. 하지만 내 마음까지 편한 것은 아니다.

소금이 많이 나오면 소금값은 자연스럽게 내려간다. 소금이 적게 나오면 값이 오른다. 올해 소금을 내지 못했다지만 돈으로만 따져보면 지난해와 다를 게 없다. 다만 소금을 비싸게 사먹고, 또 중국산 소금을 국산 천일염으로 속아서 사먹는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기에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듯이 소금도 적당히 내고 가격도 적당히 내면 우리에게도 좋고 소금을 사먹는 소비자에게도 좋다.

나는 동생과 함께 염전생활을 월급쟁이로 시작했다. 당시 월급은 1만8천원이었는데, 쌀 한가마니가 6천원일 때니까 괜찮은 돈벌이였다. 하지만 평생 월급쟁이로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동생과 함께 신안의 섬으로 가 개인 염전을 맡아 했는데, 너무 일이 힘들어 동생은 도중에 그만두고 나만 계속 일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하면서 아내도 염전 일을 도왔고, 자식이 자라면서 자식 또한 일을 도왔다. 아내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고되서 못 견디겠다며 나와 싸움도 많이 했다. 마찬가지로 자식도 떼를 많이 썼다. 그럴 만도 하다. 염전 일은 하루 중 가장 뜨거운 때 시작하기에 그만큼 더 힘들다. 나 또한 그만두고 싶은 적이 많았다. 그러나 배우지 못해서 이것 말고는 달리 할 게 없었다.

지금은 신안의 육지에서 염전 일을 하는데, 참기 힘든 일들이 많았다. 댐이 범람해 염전이 침수되기도 했고, 태풍으로 소금창고가 두 번이나 무너졌었다. 그렇지만 나같이 염전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소금을 내지 못하는 게 제일 안타깝다.

요새 소금이 덜 나면서 중국산 소금이 천일염으로 둔갑해 소비자의 눈을 속이는 일이 많아졌다.

30년 동안 일한 경험으로 국내산 소금과 외국산 소금을 구별하는 몇가지 방법을 알려 드리고 싶다. 천일염은 크기가 일정하고 입자별 각이 뚜렷하지만, 중국산 소금은 입자가 고르지 않고 마모나 깨짐이 심하다. 맛에서도 차이가 크다. 국산 천일염은 고소하고 짜지만, 중국산 소금은 짜고 쓴 맛이 강하다.

옛날 어려운 시절에는 반찬도 국도 없을 때 물에 소금을 끓여서 먹었다. 그만큼 우리 소금이 맛있다는 말이다. 소비자들도 되도록 국산 천일염을 사 드셨으면 좋겠다. 많은 염전이 사라졌지만, 우리 천일염을 찾는 소비자를 위해 계속 깨끗한 소금, 정직한 소금을 만들겠다. 항상 곁에서 집안 살림에 염전 일까지 도와준 영오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김봉철(전남 신안군 지도읍 읍내리.57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