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죄받은 수서… 의혹은 여전/권영민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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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역 국회의원 5명과 청와대비서관,재벌그룹 회장 등을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했던 수서사건 1심재판이 5일 3명 실형,6명 집행유예의 선고공판으로 그 막을 내렸다.
자신들에게 뇌물죄가 적용된다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모두가 법정에 서야한다고 항변하던 의원 피고인 모두에게 유죄가 선고됐고 그중 1명은 공갈죄가 적용됐다.
또 수서사건과 관련해 단 한푼의 돈도 받지 않았다고 법정에서 주장했던 전 청와대비서관에게도 2억6천만원의 수뢰가 인정됐다.
피고인들에게는 결코 적지않은 형량이겠지만 국민들의 실망과 아쉬움이 큰 것은 수서사건이 안고 있는 의혹만큼 사법부에 건 기대가 컸던 때문이다.
그동안의 수서재판은 검찰과 사법부의 단죄의지 한계라는 레일을 따라 궤도이탈없이 달려온 열차와도 같았다.
여야의원,전 청와대비서관 각 1명에게 실형이 선고되고,여야의원 3명과 공무원·주택조합간사·기업인 각 1명에게 골고루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이같은 「황금분할」이 가능케한 검찰의 기소단계에서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수서사건은 첫 공판부터 의혹규명보다는 뇌물이냐,정치자금이냐 하는 공방이 펼쳐진게 특징이었다.
민자당 최고위원 3명을 포함한 19명에 대한 변호인의 증인신청과 이중 2명에 대한 재판부의 증인채택,그리고 증인들의 불출석에 이은 변호인의 증인신청 철회가 정해진 각본처럼 매끄럽게 된 것도 재판부·검찰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송고시간에 쫓긴 보도진들이 선고공판을 앞두고 미리 준비한 예상기사의 문맥과 피고인들의 양형마저도 별다른 손질없이 곧바로 보도될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이번 재판을 통해 국회의원들의 관행화된 금품수수라도 직무관련성만 인정되면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정치인들의 도덕성 회복을 촉구한 효과정도가 고작이었다.
법원이 공소사실을 벗어나 의혹을 해소할 의무는 없다 할지라도 이 사건이 함축하고 있는 정치·사회적 의미를 인식했다면 비리의 뿌리를 캐는데 좀더 전진적인 자세를 보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홀가분한 표정으로 재판부와 검찰이 떠난 서울형사지법 대법정에서 뇌물은 단죄를 받았으나 의혹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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