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세계 자동차시장 지각 변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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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세계 자동차시장에 지각변동 조짐이 일고 있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미국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 일대 선풍을 일으키며 약진하는 반면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듯 보였던 미국 자동차업체들은 뒷걸음치고 있다. 또 인구 12억의 중국 시장을 장악하지 않고는 경쟁에서 영원히 뒤처진다고 판단한 세계 자동차회사들이 이곳에서 사활을 건 싸움에 들어갔다. 국내 업체들도 중국 시장에서의 경쟁에 대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질주하는 일본 자동차=지난해까지 세계 3위(판매대수 기준)였던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올해 미국 포드자동차를 제치고 세계 2위의 자동차 제조업체로 올라섰다.

지난 5일 발표한 도요타의 올 상반기(4~9월) 실적을 보면 판매대수는 3백17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 늘어나면서 포드(3백12만대)를 제쳤다. 도요타는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지난해보다 23.2% 늘어난 5천2백억엔의 순이익을 올렸다.

비용절감 노력에다 차세대 고급 승용차 개발 등 기술투자에 진력한 덕분이다. 도요타는 지난 6개월 동안 비용절감과 60%에 이르는 현지생산 전환 등으로 1천1백억엔의 합리화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일본 업계 3위의 혼다 자동차도 상반기에 전년 동기보다 22.8% 증가한 2천4백92억엔의 순이익을 냈다. 사상 최고 기록이다.

애널리스트들은 도요타와 혼다가 올 한해 사상 최고의 매출과 순익을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기로에 선 미국차=미국 자동차업체들은 중국 시장 진출에 열을 올렸으나, 정작 미국 본토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지난달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신용등급을 BBB로 하향 조정한 데 이어 이달 초 포드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 바로 위인 BBB-로 낮췄다.

업계 1위인 제너럴 모터스(GM)도 현재 BBB의 신용등급을 받고 있지만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이어서 등급 하락을 걱정하고 있다.

크라이슬러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미국에 있는 6개 공장을 폐쇄하거나 매각할 예정이다. 포드도 연말까지 북미 시장에서 3천50명, 유럽시장에서 1천7백명의 직원을 해고할 방침이다.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고객들의 요구에 맞춘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에 밀렸고, 중저가 대중 승용차 부문에서는 한국 자동차업체 등에 시장을 내주어 협공을 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에 사활 걸렸다=중국 자동차시장은 지난해 55% 성장한 데 이어 올해는 지난 9월까지 1백45만대가 팔려 69%나 다시 신장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시장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폴크스바겐.GM.포드 등 세계 주요업체들은 중국 시장에 투자를 늘릴 계획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GM은 중국 시장에 2006년까지 생산설비를 50% 이상 늘려 연간 76만6천대 생산설비를 갖추기로 했다.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포드도 공장 건립과 설비 확충을 위해 11억7천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폴크스바겐도 지난 7월 중국 내 생산량을 두배로 늘리기 위해 60억유로를 투자한다고 밝혔으며 일본 도요타도 광저우(廣川)에 두번째 공장을 세우기 위해 협상 중이다.

중국은 이 때문에 최근 설비과잉과 과열경쟁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중국자동차생산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자동차 재고량은 이미 8만대를 넘어섰다.

◇한국 업체들의 생존전략=한국 자동차업체들은 세계 시장의 지각변동 속에서도 일단 상승흐름을 잘 타고 있다. 지난달 자동차 수출은 30만대를 돌파해 한달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자동차공업협회의 김소림 이사는 "현대차는 연간 생산 규모가 3백여만대로 세계 7위"라며 "최근 임금이 많이 올랐지만 여전히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는 게 국내 업체들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브랜드와 기술력이다. 국내 자동차는 아직도 '싸구려' 이미지다. 브랜드 경쟁의 전초기지인 일본 시장에서 현대차가 한 해에 고작 2천3백대 팔리는 정도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21세기 비전'을 통해 "2010년까지 글로벌 생산체제로 연간 생산 규모가 5백만대에 달한다"면서 "연간 30만대 이상 팔리는 최고급 브랜드를 만들어야 진정한 세계 5위 자동차 기업이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우수한 생산성을 바탕으로 보통 수준에 그치고 있는 브랜드와 미흡한 기술력을 높여야 선진 자동차 업체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원호.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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