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말의 정치학] 13. 검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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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화책을 사다 주고 읽은 소감을 물었다. 아이는 아직 '메뉴'만 보아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책은 메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목차(테이블)라고 하는 것이라고 일러주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그러기에 애들을 데리고 자주 식당에 가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혀를 찬다. 손자의 컴퓨터 메뉴는 할머니에게는 식당 메뉴다.

미국의 이 유머처럼 한국의 할아버지들에게 '검색'이라고 하면 길거리나 여관에서 당했던 검문검색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손자들은 인터넷 검색인 줄 알고 즐거워한다. 정말 검색이란 말은 그렇게도 많이 변했다. 정보기술(IT) 버블로 다른 기업들은 모두 문을 닫는데 유독 검색사이트인 구글(google)만은 급성장했다.

창업 초인 1999년만 해도 하루 1만 건밖에 되지 않던 검색수가 올해 봄에는 2억 건을 넘어섰다. 7천만명이 넘는 사용자와 전 세계 인터넷 검색의 53%를 차지하는 구글 신화는 '검색'이란 말이 IT환경을 혁신하는 미래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글은 10의 100제곱을 뜻하는 구걸(GOOGOL)의 신조어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것은 30개의 웹 페이지에 흩어져 있는 천문학적 숫자의 데이터 속에서 원하는 한개의 자료를 찾아주는 작업이다. 보통 검색엔진으로는 이것저것 두서없이 섞여 나오는 바람에 찾으나 마나 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페이지 순위'라고 하는 구글 특유의 판단기준으로 웹 페이지를 검색.배열하는 독창적 아이디어와 알고리즘이 나오게 된 것이다.

현대정치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다 같이 검색작업으로 시작된다.

옛날의 정치권력은 국민을 검문검색해 나라를 유지하고 보안을 지켜왔다. 하지만 오늘날의 정치가는 스탠퍼드의 두 젊은 대학원생 '라리 페이지'와 '서지 부린'이 한 것처럼 새로운 검색엔진을 만들어 국민과 세계의 정치현황을 정확하게 검색하여 찾아내는 작업이다.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지금 당장 구글에 들어가 자기 이름을 쳐 검색해 보라. 그러면 33억7백99만8천7백1개의 총 웹 페이지에서 몇 건의 자료가 검색되었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일일이 자기 자료를 뒤져보기 전에 그 숫자만 보아도 분명 무엇인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을 것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구글의 검색엔진을 통해 세계를 내다본다. 그래서 피에르 라줄리의 최근 논문의 비판처럼 구글의 검색이 잘못되어 많은 자료를 놓치거나 엉뚱한 검색결과를 가져온다면 세계는 왜곡된다. 그래서 그보다 더 새로운 개념의 검색엔진이 개발되어 도전을 받고 있다. 검색엔진의 끝없는 혁신과 도전, 이것이 바로 정치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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