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태아의 잠』 전원책 『슬픔에…』-변화의 징후로 들여다본 현실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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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흔히 사람들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구조 내에서는 시로 노래될 더 이상의 신비가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더없은 욕망을 촉구하며 자리바꿈 하는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순환체계가 이제 모든 인간관계를 대변해준다고 믿는다. 풍요를 축복하는 거대한 선전탑의 문구보다 더 위대한 언어가 존재한다고 믿지 못할 지점에 우리는 와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시가 그 자본주의적 세태를 반영하는 어휘로 가득차 있는 것을 우리는 의미 심장하게 바라본다. 일회적이고 대량 생산적이며 발 빠르고 개그스러운 젊은 세대의 발놀림이나, 정보사회와 이데올로기의 하수인이 된 언어를 해체시키며 내용 언어의 허위성을 노래하는 아방가르드적 흐름들에 대해 보다 사려 깊은 인식이 필요한 때다.
이 사려 깊은 인식이란 반드시 긍정적인 형태의 것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그렇듯 현상적인 자리에서만 파악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본의 논리가 휭행하게 된 인류 본질의 원리, 또는 그러한 현상적인 것의 근저를 이루는 인류 보편의 심리 같은 것이었다는 논리도 중요한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신비의 상실이라는 현상을 직시하는 노력과 더불어 그 현상 속에 내포된 변화의 징후를 읽고 그 현상과 변화간의 관련성을 탐구하는 지적인 태도가 크게 요청되고 있다.
김기택씨의 시집『태아의 잠』은 80년대 「시운동」동인의 동물적 이미지와 신화적 상상력에 맥을 대고있는 듯하면서도 어느새 오늘날 자본주의적 삶의 양태를 고스란히 끌어들이면 서 삶을 해석하는 독특한 시각을 부각시킨다. 그는 이 세계의 현상을 시간의 흐름 위에서 파악한다. 그가 보기에 사물은 「지금-여기」의 현상적 가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은 시간의 축적물, 그것도 오래 누적된 불안의 시간이 형상을 이룬 것이다. 가령 우리들이 키우는 가축을 「게걸스럽던 식욕과 평화스럽던 되새김」의 시간 안에 「해골이 되려고 순대가 되려고」(「마장동 도축장에서」)살아온 불길한 징후가 내재된 존재로 파악한다. 투명하고 빛나는 「유리」를 「날카로운 무기」를 내재한 「보호색」으로 명명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현상은 변화와 더불어 존재하는 「한 순간」이다. 더욱이 그때의 변화는 불길한 미래로 열려있다. 태아가 꾸는 꿈조차 죽음에의 변화로 보는(「태아의 꿈」) 그의 시간의식은 너무 참혹하지만 언제나 현상 세계에 대한 분석적인 자세로 성립되기 때문에 사랑스럽다.
전원책 씨의 시집 『슬픔에 관한 견해』는 현실적 존재를 해명하는 인식의 엄정성을 앞세운다. 대개 우리의 인식은 당대적 이념을 수반하는 내용언어의 침해를 받게 마련이다. 시인은 자신의 생각을 자르는(「어느 인문주의자의 사인」) 엄정성으로 통념적 인식을 뒤집고 흔든다. 그가 보기에 세계는 이미 형성되어 외양이 분명한 물질의 것이 아니라 언제나 유동하는 반 물질의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지점에서 세계를 노래하는 것은 허위에 속한다. 그는 바람이 불고 사람이 죽고 개가 짖는 사소한 정황을 만들며 물질적 세계의 허위를 고발한다. 동시에 그 현상의 이면을 흐르는 반 물질의 영원한 힘을 재현하고 있다. 【박덕규<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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