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자유/학계의 “핫이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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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서울사회과학연 연구원 구속 겹쳐 파장 커질듯/“연구활동이 수사대상 될수 없다” 진보 사회학자들 반발/보수학회도 “외부제약에 대처” 방향선회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학계를 들끓게 하고 있다.
새삼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핫이슈로 떠오른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한국사회학회(회장 김영모)가 학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던 지난달 29일 진보적 소장연구단체인 서울사회과학연구소(소장 김진균) 연구원 6명이 구속되는 사건이 겹쳤기 때문이다.
학계에선 기본권인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헌법에 명시돼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충분히 보장되지 못해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러한 학계의 불만이 표면화된 것이 지난해 12월의 사회학회 정기총회였다. 당시 폭로된 보안사 민간인 사찰명단에 사회학자 5명이 포함된 것이 알려지자 소장학자 64명이 학문과 사상의 자유보장을 위한 특별위원회 설치와 공식 항의 성명채택을 주장하는 연대서명 제안서를 내놓았다.
학회측은 당시 즉각적 의사표시 대신 이 문제를 논의할 임시위원회를 구성했으며,임시위원회는 지난 6개월간 「학문과 사상의 자유보장을 위한 방안을 연구·토론해왔다. 그 결과 이번 사회학회 임시대회에서 「학문자유와 윤리위원회」설치가 결정됐다.
충남대에서 열린 임시총회는 임시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송복 교수(연세대)등 정회원 63명이 참가하고 62명이 위임장을 보내 성회됐으며,위원회 설치는 찬성 48,반대 7의 표결로 결정됐다. 송교수는 새로 구성된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뽑혔으며 위원구성을 위임받았다.
학문자유와 윤리위원회는 설치취지문에서 『경직된 이념과 낡은 인습에서 벗어나 창조적 사유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제약없는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며 『회원들의 활동에 가해지는 어떠한 외부의 제약에도 회칙과 내규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위원회는 학문활동과 관련된 자율성 침해사례에 대한 회원들의 소청을 접수·심의해 이사회나 총회에 상정하는 일(내규 4조3항)등을 한다.
이로써 대표적 보수학술단체에 처음으로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능동적으로 지켜가고자 하는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물론 위원회의 기능은 매우 신중하게 결정돼 제한적이다. 위원회는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 사례에 대해 진상을 조사하고 토론하는데 그치며,구체적 대외행동은 학회 이사회·총회결정에 맡긴다. 존속기간도 2년으로 한정돼 2년후 평가여부에 따라 상설기구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학문의 자유는 당연히 보장되는 것」으로 치부해온 보수학회가 처음으로 『학문의 자유는 저절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 스스로 나서 지키겠다』는 입장에서 그 창구를 마련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이는 또 비슷한 학회들에 선례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적잖은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학회의 결정으로 학문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일어난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구속사건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구속된 연구원들은 모두 서울대대학원 박사·석사들이며 그들이 소속된 연구소는 공개적 연구단체다. 따라서 이들의 구속은 지금까지 있어온 운동권학생 구속이나 지하조직원 검거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즉 이들의 문제 논문은 일단 「연구 성과물」로 해석될 수 있으며,이들의 구속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탄압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진보적 연구자들은 관련단체를 포괄하는 공동대책위를 구성하는등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순수한 학문적 연구활동은 학문적 토론으로 평가되는 것이지 사법적 수사대상일 수 없다』『민중 민주변혁을 얘기하는 것도 「사회주의를 선동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우리사회에 대한 분석결과로 나온 「논리적 전개」차원』이라는 주장들이다.
학계 초미의 관심사는 우연히 같은 날 일어난 두 사건의 결합여부다.
사회학회 일부 회원사이에서는 『위원회 설치취지에 따라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사건을 첫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서울사회과학연구소의 대표인 김진균 교수와 회원인 서관모 교수(충북대) 등이 사회학회 회원이며,구속된 연구원중 3명이 사회학 전공이라는 사실로 미루어 문제의 공식제기 가능성은 적지 않다.
사회학회에서 이 문제를 의제로 다룰 경우 진보적 학술단체의 「당연한 반발」과는 다른 차원에서 「학문과 사상의 자유」논의가 확산될 것이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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