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결국 불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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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열린우리당은 24일 하이닉스반도체 공장 증설에 관한 당정협의에서 팔당 상수원 오염을 막기 위해 경기도 이천 공장의 증설을 허용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올해 안에 시작될 1개 라인의 공장 증설은 충북 청주를 포함한 비수도권 지역에 허용하되 추가 라인 증설은 환경 규제 개편 작업을 거쳐 나중에 허용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이에 따라 논란을 벌였던 이천 공장 증설 문제는 상수원 주변의 환경 규제 개편 방향에 따라 다음 정부로 떠넘겨지게 됐다.

◆이천 공장 증설 불허=산업자원부 이재훈 산업정책본부장은 당정협의 결과 브리핑에서 "하이닉스반도체가 제출한 수정 증설 계획안을 검토한 결과 비수도권 지역의 1차 증설은 허용하되 이천 공장의 2차 증설은 현재로선 곤란하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하이닉스 이천공장은 자연보전권역이자 상수원 보호구역에 위치해 있다"면서 "2300만 수도권 주민의 수질 문제에 이상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볍게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기업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보다 상수원 보호 등 삶의 질 문제가 우선한다고 본 것이다.

이에 앞서 하이닉스반도체는 15일 12인치(300mm) 반도체 웨이퍼 생산공장을 올해 안에 비수도권에 1개 라인을 증설하고, 내년에는 이천에 1개 라인, 나머지 1개 라인의 증설 위치는 향후 결정하겠다는 수정안을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표 참조>

그동안 정부와 하이닉스의 핵심 쟁점은 팔당 상수원 보호구역에 인접한 이천 공장의 증설 여부였다. 각종 규제를 과감히 풀어 증설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과 D램 반도체 웨이퍼 가공 과정에서 배출되는 구리 성분이 상수원을 오염시킨다는 우려가 팽팽히 맞섰다. 결국 정부는 팔당 수자원이 한번 오염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명분에 밀려 현 정부에서는 이천 공장 증설을 허용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정부는 다만 3차 라인 증설 여부는 상수원 환경 규제 개편과 환경 처리기술 발전 등을 감안해 '최적의 입지'를 결정하겠다고 여지를 남겨놓았다. 그러나 관련 규제 검토에만 1~2년이 걸릴 전망이어서 3차 라인 증설 여부는 사실상 다음 정부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만만치 않은 반발=하이닉스 측은 "아쉬운 점은 있지만 환경법안 보완 가능성이 열린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그동안 투자 계획의 핵심인 '이천 공장 증설'이 어려워진 때문이다.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현재 이천 공장에 하나뿐인 12인치 생산라인을 이른 시일 안에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데 당분간 이천 공장 증설은 엄두를 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이천은 이미 공장부지를 확보한 상태여서 즉시 착공이 가능하지만 다른 지역은 토지 매입에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하이닉스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새로운 부지를 찾는 방안도 내부적으로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 이외의 지역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경기도 이천시민들의 반발도 거세게 일고 있다. 이천시 범시민대책위원회는 26일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시민 4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집회를 열고 집단 삭발식과 화형식을 할 예정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이 정부는 국가 균형발전 논리를 앞세워 기업의 선택권을 박탈했다"며 "더 이상 하이닉스의 팔을 비틀지 말라"고 주장했다.

정치권도 후폭풍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열린우리당 경기도 출신 의원들은 "정부가 사전에 미리 입장을 정해 언론에 흘린 다음 당정협의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권오규 경제부총리를 몰아세웠다. 이들은 이날 당정협의가 재경위 대신 산자위 주관으로 바뀐 것도 변재일 4정조위원장의 지역구가 충북 청원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열린우리당 우제창 3정조위원장(경기 용인갑)은 당정협의 결과 발표 후 기자 회견을 열고 "당정협의에서 이천을 불허한다는 내용은 결정된 바 없다"며 "청주 공장의 증설은 허용하되 앞으로 1년 동안 관련 규제 개편 추이를 지켜보자고 합의했는데 정부가 사실과 다르게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홍병기·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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