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술시장 외국화랑 첫 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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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프랑스 파리의 세피아화랑이 외국화랑으로는 처음으로 국내에 직접 진출했다.
이 화랑은 서울 청담동의 박여숙 화랑(544-2500)을 빌려 26일부터 7월3일까지 「프랑스 현대미술전」을 열고있다.
외국화랑의 국내 상륙은 올해부터 해외 미술품 수입이 완전 개방됨에 따라 예견되어 오던 것으로 세피아 화랑이 첫 테이프를 끊은 것. 이 뒤를 따라 구미 각국의 유명 화랑들이 속속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보여 국내 화랑가가 긴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바사렐리·콩바스·아다미·카갈레로·에로 등 유명한 작가들의 유화 80점과 피카소·샤갈·달리·아펠·미로 등 거장들의 판화 80점 등 총 1백60점이 전시·판매된다.
세피아화랑은 파리에 개관한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신예화랑. 그러나 공인 감정사를 4명이나 두고 여타 3∼4개 대형 화랑들과 연계해 주로 현대미술품의 해외수출을 전담하고 있다.
이 화랑은 올 들어 아시아권 국가를 새로운 시장으로 겨냥, 일본을 비롯해 홍콩·대만·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전시회를 열어왔다.
최근 내한한 이 화랑 대표 장 마르크 데크로씨는 『현재로선 한국 컬텍터들의 구매력이 충분하다고는 생각지 않으나 앞으로 5∼6년 후면 크게 호전될 것으로 판단해 직접 들어왔다』고 밝히고 『앞으로 상설사무실(지사)도 설치해 매년 한국전시회를 열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한국의 현대미술이 너무 미국 족으로 치우쳐져 있어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미술을 알리고자한다』고 말하고 『앞으로 한국작가를 파리화단에 적극 소개하는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데크로씨는 이미 2∼3년 전부터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시장성을 타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프랑스문화원과 한불문화협회의 이름을 앞세워 10월31일∼11월10일 잠실 롯데 백화점 미술관에서「90 프랑스 유럽 명화 3백년 전」을 열기도 했다.
세피아화랑의 국내 진출에 화랑가가 긴장하는 것은 무엇보다 외국미술품의 가격문제.
그 동안 국내화랑들은 외국화랑이나 딜러들한테 작품을 구입한 후 상당히 높은 마진을 붙여 비싼 값에 팔아온 실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세피아화랑을 비롯한 외국화랑들이 직접 진출해 「합당한」값으로 작품을 팔 경우 외국 작품시장에 상당한 혼란과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데크로씨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상당히 싼값에 작품을 공급하겠다』고 강조, 한국의 비싼 외국 작품 값을 깊이 의식하는 듯 했다.
그는 그 동안 국내의 K, D 화랑 등과도 접촉했으나 이 같은 가격문제로 제휴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동안 외국 화랑관계자나 딜러들이 내한, 개별적으로 국내화랑이나 컬텍터들에 외국작품을 팔아왔으나 이번 세피아화랑의 경우처럼 공개적으로 전시회를 통해 판매하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한 화랑관계자는 『외국화랑의 국내진출이 우리 미술시장을 잠식하는 것 같아 반갑지는 않으나 외국 작품가격의 정상화와 국내작가의 해외소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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