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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영남우위 사회구조 낳았다|6·25 유석춘 교수 『한국전쟁과 남한사회의 구조변화』논문서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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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2면

한국전쟁 발발 41주년을 맞아 관계서적들이 쏟아지고 있으나 학문적 연구 성과들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연구자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전쟁발발 40주년이던 지난해에는 각종 학술행사와 연구서적 출판이 이어졌으나 올해의 경우 몇몇 증언집들이 대중적 관심을 끌고 있을 뿐이다.
반면 학술행사로는 「한국전쟁기념사업회」(회장 이병형) 주최 「현대사 속의 국군」세미나가 거의 유일하게 21일 열렸으며, 학술적 연구서로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최근 출간한 『한국전쟁과 남북한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눈길을 끈다.
이 같은 연구활동의 상대적 부족은 지난해 많은 연구성과들이 쏟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원인은 연구수준의 질적 향상이 미흡하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즉 현 시기는 80년대 후반이후 강하게 불었던 진보적 연구와 이에 대한 보수적 연구의 반론이 한풀 수그러들면서 「시각이나 이데올로기의 차이」보다 「실증적·객관적 사실발굴」이 더욱 중시되는 때다. 따라서 기존의 반복적인 논쟁은 일단락 되고 각각 연구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모색의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연구업적이 아직 많이 나오지 않아 상대적 침체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들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편 『한국전쟁과 남북한 사회의 구조적 변화』는 이 같은 새로운 연구경향의 일단을 보여주는 책으로 주목된다. 수록된 논문들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유석춘 교수(연세대·사회학)의 「한국전쟁과 남한사회의 구조화」. 유 교수는 「전쟁자체」보다 「전쟁이 우리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꿔놨는가」라는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통계자료를 이용한 실증적 방법을 사용해 「시각」보다 「사실」을 중시했다.
유 교수는 『전쟁이 군부로 대표되는 반공세력의 지배집단을 형성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로 우리 사회를 규정해왔다』고 주장한다. 즉 전쟁 결과 정치적 지배세력이 「항일세력」에서 「반공세력」(친일세력)으로 바뀌었고, 군부지배세력도 「이북출신」에서 「영남출신」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정치지배세력 변화와 관련된 구체적 수치를 보면 정부를 수립한 48년부터 전쟁이 끝나는 53년까지 전체 각료 중 일제관료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6%에 불과했으나 점차 21%(54∼58년), 25%(59∼60년)로 늘어난다. 반면 항일독립운동 출신은 34%→21%→0%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경우도 친일 경력자들이 제헌국회(48년) 당시 4.8%에서 2대(50년) 9.2%, 3대(54년) 9.6%, 4대(58년) 10.2%로 늘어난다.
군 지배집단도 전쟁 전 이북출생의 「만군」출신들이 주도적 세력을 형성했으나 전쟁을 경험하면서 영남 출신으로 바뀌게 된다. 유 교수는 그 원인으로 ▲분단으로 이북출신의 재 충원이 불가능했으며 ▲전쟁 중 낙동강 전선에서의 교착상태가 지속되면서 영남지역출신이 군(특히 진해에 있었던 육군사관학교)에 많이 뛰어들었으며 ▲이후 영남출신 젊은 장교가 5·16을 통해 정치적 지배세력으로 등장했다는 것 등을 지적한다. 유 교수는 또 구체적 설문조사결과 영남지역 사람들이 국군에 가장 많이 참여했고(41%) 호남지역 사람들이 가장 적게 참여했음(27%)을 밝히고, 그 결과 참전했던 집단이 전쟁 후 더 많은 보상을 받아왔다고 주장한다.
결국 전쟁이 초래한 군 중심 지배구조 재편이 오늘날 지역격차·지역감정으로 대표되는 사회구조를 형성해왔다는 것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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