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 제가 어쩌다가' 허재 감독 "꼴찌는 처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경기는 자꾸 지고. 신경을 많이 써서 몸이 말이 아닙니다."

22일 프로농구 KCC 허재(사진) 감독의 목소리는 완전히 잠겨 있었다.

장비처럼 술을 들이켜고, 일기당천의 기세로 코트를 누비던 그의 모습은 아득하기만 하다. 이제 나이 마흔둘인데 그의 머리는 희끗희끗하다.

구단 관계자는 "감독을 맡고 나서 2년 새 흰머리가 부쩍 늘고, 머리카락 숱도 반 정도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KCC는 22일 현재 12승23패로 최하위다. 허 감독은 "농구를 시작하고 꼴찌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허 감독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KCC는 한국 프로농구 10년을 호령했으나 주축 선수인 이상민.추승균.조성원이 모두 노장이었고, 그들의 그늘이 너무 커 젊은 선수를 키우지도 못했다. 지인들은 "지는 해를 따라가는 격"이라며 허 감독의 KCC 감독을 만류했으나 허 감독은 현역 시절 그랬던 것처럼 불가능은 없다고 믿고 팀을 맡았다.

감독 첫해인 지난 시즌에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어 "일희일비하지 않는 긴 호흡과 스타 출신답지 않게 스타선수들을 잘 추스르는 지도력을 가졌다"는 좋은 평가와 "전임 신선우 감독이 남기고 간 것을 받아먹은 것일 뿐"이라는 나쁜 평가가 엇갈렸다.

그러나 지금 KCC는 엉망이다. 골밑의 핵심으로 찍었던 외국인 선수 마이클 라이트가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부상으로 이탈했고, 노장 선수들은 줄 부상을 당했다. 김광 코치는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을 재정비해야 하면서도 노장을 배려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더하다"고 말했다.

팀 관계자는 "허 감독이 자면서 '찬스를 만들어 줬는데 그것도 못 넣어'라며 잠꼬대도 하더라"고 말했다. 벤치에 앉아 속절없이 무너지는 팀의 패배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자주 카메라에 잡힌다.

그러나 그는 젊은 시절처럼 흥분하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수습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감독으로서의 재능이 나쁜 건 아니다. KCC는 내년을 기약하고 있다.

"멋있는 농구, 관중이 좋아하는 농구, 이기는 농구를 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성호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