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코모모 코리아 창립 심포지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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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땅에서 근대 건축물은 훼손.멸실 일로를 걷고 있다. 우리 건축에서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의 양식 건축물 등은 근대의 개념이 개항 후 일본을 통해 도입됨으로써 그 잔재를 없애자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을 공간을 잃기 일쑤다. 그런가 하면 1950~60년대 건축물은 개발논리에 밀려 사라지는 추세다.

14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공간 사옥에서 열린 도코모모코리아의 창립 심포지엄에 대한 관심은 바로 이를 반영한 것이다.

이 단체 김정동(목원대 건축과 교수)회장은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자는 도코모모의 활동은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을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쓰임이 많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랜드마크로 만들자는 건축인들의 다짐이기도 하다"는 말로 그 의미를 대신했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김정신(단국대 건축학) 교수는 초기 우리의 근대건축을 '모더니즘의 유입과 모방'이라는 표현으로 압축했다. 당시 우리 건축계는 서구 근대건축의 근간이었던 사회주의 이념과 아방가르드 정신을 수용할 수 없었기에 내재된 정신이 아니라 모방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후 1970년대 들어서야 근대적 자아를 건축에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우리 근대 건축사가 타율성과 정체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김교수는 "그것을 극복하는 논리도 그 파행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근대 건축 그 자체를 비판적으로 되돌아보며 새로운 잠재력을 찾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그 유산들이 더 이상 훼손되는 것을 막아야 함은 물론이다. 이에 그는 "근대 문화유산의 보존은 학자들의 연구,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넘어 국민 전체의 실천 운동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활동을 시작한 도코모모 코리아에 대해 기대를 거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원칙으로 연구.보존의 대상은 대략 50년 이전에 만들어진 건축물이지만 도코모모 일본 지부의 경우 그 범위가 좀더 확장되고 있다. 김회장은 "모든 건물을 무조건 보존하자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면서 "우리 단체는 근대 건축물의 상징적.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연구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벌인다"고 설명했다.

김정신 교수가 제시한 역사학 등 관련 학문과의 연계, 동아시아 근대 건축과의 비교 등에 주목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이를 위한 기초작업으로 도코모모 코리아는 한국 근대건축의 목록화 작업을 벌여 내년 뉴욕에서 열리는 총회 이전에 '한국 근대 건축물 20선'을 선정하고, 근대 건축에 관한 시민 교육 활동 등도 벌일 계획이다.

이 단체는 이날 창립 회의와 함께 구 운현궁 이준저택.명동성당.강북삼성병원.이화여대 파이퍼홀 등 한국의 근대 건축물 활용 사례를 소개하는 사진 전시회를 20일까지 공간 사옥 소극장에서 연다. 건축물의 역사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는 계기가 될 듯하다.

홍수현 기자

*** 도코모모

1990년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공대에서 열렸던 국제회의를 계기로 생긴 단체로 프랑스 파리의 건축 박물관에 본부를 두고 있다. 개발에 밀리는 근대 건축물을 연구하고 보존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도코모모 코리아는 지난 5월 창립됐는데 세계 본부의 42번째 지부이자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은 두 번째 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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