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한 정전상태 “마감”/남북평화협정 추진 왜 나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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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유엔 동시가입시대 적극대비/항구적인 평화보장장치 마련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이 현실로 다가오자 정부는 한반도에 두개의 유엔 회원이 공존하게되는 상황변화를 토대로 남북관계를 새롭게 규정하고 이에 대처하는 방안마련이 본격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이상옥 외무부장관이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검토하겠다고 한 것은 이러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장관이 이날 한국지역정책연구소가 주최한 조찬정책간담회에서 『유엔가입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며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우리 민족의 궁극적 목표를 향한 노력이 시작될 것임을 강조했다.
사실 그동안 남북한은 대결위주의 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이제 양당사자가 유엔이라는 보편적인 국제기구에 회원이 되게 됐으며 국제무대에 동등한 자격으로 만나게됐다.
특히 북한은 최근 세계적 조류와 내부적 문제로 우리측의 주도에 이끌려가는 처지에 놓이자 국면전환을 위한 카드로 그동안 그들이 반대해온 유엔동시 가입과 핵사찰 수용이라는 두개의 고리를 풀어버렸다.
북한의 이같은 극적인 반전이 종래의 정책에 근본적 수정인지,아니면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정권의 존립을 유지하겠다는 것인지 아직 명확치 않다. 그러나 북한측은 이같은 변화의 실상을 감추기라도 하는듯 표면적으로 오히려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남북한 불가침선언,한반도비핵지대화,미군철수등 북한의 기존 주장을 더욱 적극적으로 들고 올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최근 잇단 방송,해외주재대사 발언 등을 통해 이러한 태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로서는 이제까지의 변화 방향과 속도를 지속시키기 위해 이러한 북측의 선전공세에 대해서뿐아니라 유엔동시가입 이후의 상황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비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유엔동시가입이 실현되면 우선 당장 주목되는 것이 유엔사의 지위와 이에 따른 남북간의 휴전체제다.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군사적제재를 가하기 위해 설치된 유엔군사령부의 존재는 다시 재규정될 수 밖에 없다.
유엔군을 구성했던 대부분의 국가가 군대를 철수시켰고 잔류하고 있는 것은 유엔군의 주축을 이룬 미군이다.
북한이 유엔회원으로 가입하게 되면 한국에 있는 유엔군사령부의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고 이는 곧 주한미군의 문제로까지 연결되게 되어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것이 휴전협정문제다.
남북한은 유전이라는 어정쩡한 정전상태에 놓여 있어 이것을 어떻게든 평화상태로 바꾸어야 한다는데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지만 문제는 양자 사이에 너무 심한 의견차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휴전협정의 당사자를 유엔군사령관에서 한국으로 바꾸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 양자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북한측은 휴전협정의 서명당사자가 미군사령관인 유엔군사령관이고,따라서 미­북한이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또 그들은 남북한간에 불가침 선언을 제시해 미군철수를 연결시키고 있다.
이장관도 분명히 했듯이 북한측 주장대로 지금 당장 유엔사령부가 해체된다면 휴전협정의 한쪽 당사자가 없어지게 되며 휴전협정 체제에 심각한 불안을 야기하게 된다.
이 때문에 협정당사자 전환과 주변강대국에 의한 평화보장등 한반도내에서 항구적인 평화보장의 제도적 장치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
북한도 70년대초 까지만해도 남북한을 당사자로 한 평화협정을 제의했었다.
62년 10월 김일성의 최고인민회의 연설,70년 9월 제25차 유엔총회 북한정부 비망록등에서는 미군철수후 남북 평화협정체결을 주장했고,72년 1월 김일성이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정전협정을 남북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제의했었다.
또 이해 6월 김일성은 워싱턴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남북상호 무력불행사에 대한 평화협정」체결을 제의하고 미군은 평화협정 체결후에 철수하라고 요구했었다.
그러던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한 평화협정을 요구하고 나중엔 3자협상을 제의한다.
그렇지만 휴전협정의 한 당사자인 중국을 비롯해 소련·미국·일본등 주변국들이 모두 남북한 양당사자간의 대화에 의한 해결을 공개적으로 희망하고 있고 한소 수교나 한중관계개선등 한반도 주변환경의 변화를 북한측도 회피만 할 수는 없게 됐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최근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한반도핵전략의 수정가능성등이 집중거론되고 있는등 전반적인 정세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장관의 언급처럼 한반도에 대한 항구적 평화보장 장치가 마련되는 여건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남북간의 관계가 그동안 표면적인 여러가지 대화나 교류에도 불구하고 제자리걸음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엔이라는 공식적인 무대는 양자간의 대화를 안정적으로 지속케 할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여 이를 바탕으로한 남북관계와 한반도주변 정세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해 주고있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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