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도 포스트모더니즘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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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포스트모더니즘 바람이 영화계에도「슬쩍」불었다.
슬쩍이란 표현은 영화계가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을 생산하지는 않고 소설의 영화화를 시도하기 때문.
장선우 감독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대표작인 하일지의『경마장 가는 길』을 영상에 옮긴다.
또 신승수 감독은 포스트모던계로 분류될 수 있는 김수경의 소설『?유죵』을 준비중이다.
그리고 미국 로케를 끝내고 개봉 준비중인『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를 연출한 이석기 감독은 스스로 이 영화를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라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후기산업사회」또는「탈산업사회」의 증후군을 뜻하는바 지난해부터 우리문화계 전반에 불어닥친 신사조.
19세기말의 모더니즘을 수용·극복한다는 점에서는「후기」쪽에 가깝고, 매체문화·전자문화의 지배아래 20세기말인간의 원자화에 따른 권위·질서·중심·확실성 등의 붕괴라는 사회현상에 비중을 두면 포스트모더니즘은「탈산업사회」를 설명하는 문화이론을 뜻한다.
『경마장 가는 길』을 연출키로 한 장 감독은『소설이 보여주는 바 주인공의 행위를 목적상실이 아닌 상황에 따라 유동하는 목적의 표류라고 해석하고 싶다』고 한다.
여기에 리얼리즘기법을 가미해 영화를 만들겠다는 강 감독의 설명대로라면『경마장…』은 「후기산업사회」를 앓는 포스트모더니즘 적 인간을 그리게되는 셈이다.
주인공 R는 프랑스 유학에서 귀국한 뒤 파리에서 동거했던 J라는 여자를 찾아 만나지만 둘의 사이가 이미 끝장났음을 느낀다. 아내와의 이혼을 시도하나 그나마도 실패한다. 취직도 안된 R는 절망조차 없이 다시 고국을 떠난다. 소설『경마장…』의 대강 줄거리다.
이 작품은「전혀 새로운 느낌의 소설」이란 호평과「한국적 변용이 전혀 안된 외래종」이란 혹평을 아울러 받으며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어쨌든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행위를 극 사실적으로 묘사, 사랑·질서·도덕 등으로 맺어진 것처럼 보이는 인간관계가 얼마나 위장으로 가득 찬 절망적인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장 감독은 이러한 소설의 경향을 카메라워크의 완급, 색감의 조절, 영화적 배경장치 등으로 표현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경마장…』은 문성근·강수연이 주연을 맡고 제작사인 태흥영화사가 하일지씨에게 각색료 포함, 원작 영화화권을 3천만원에 구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수경의『?유죵』의 경우 하씨의『경마장…』과는 다른 문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일반적으론 포스트모더니즘 계열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어느 평론가의 지적처럼「무정부적 퇴폐성이 우글대는 듯해」영화로서는 많은 부분을 걸러낼 필요가 있다.
한편 김한길의 소설을 영화화한『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는 미국에서의 방탕한 도피성 생활로 끝내 파국을 맞는 미국이민의 이야기로 감독이 이를 포스트모더니즘 적으로 해석해냈다는 것.
영화계는 신사조의 영화계 흡입은 좋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을 마치「허무주의자의 맹목적 방탕」정도로 해석,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지적을 하고있다.<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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