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성 없다는 '영남 신공항' 건교부, 서둘러 검토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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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7일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에서 '북항 재개발종합계획'을 보고받고 지역 상공인들과 오찬을 했다.

여기에서 부산상공회의소 신정택 회장은 "인천공항에 필적할 동남권 신국제공항을 건설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남부권 주민들이 인천공항을 이용하느라 연간 3600억원이 낭비되고 물류 비용도 엄청나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지금부터 공식 검토해 가급적 신속하게 어느 방향이든 해보도록 하자"고 말했다. 배석한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에게 검토를 지시했다.

이보다 한 달 전인 11월 29일. 노 대통령은 올해 말 개항하는 전남 무안공항을 방문했다. 노 대통령을 마중한 무안군수는 "무안공항 활주로를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2800m인 활주로를 가장 큰 여객기인 보잉747-400 기종이 내릴 수 있게 400m쯤 더 늘려 달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여기에서도 "사업을 추진하도록 한 이상 차질 없도록 잘해달라"고 이춘희 건교부 차관에게 지시했다.

◆고민하는 건교부=영남권에선 계속 신공항을 요구해 왔지만 건교부는 2010년 이후에나 검토할 계획이었다. 3700억원을 투입한 김해공항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고, 2008년에 공사가 끝나면 2020년까지는 영남 지역 항공 수요를 충당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2004년 부산시가 발주한 연구용역에서도 '신공항은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익명을 요구한 건교부 관계자는 18일 "대통령 지시니까 빨리 계획을 세우고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교부는 이달 말까지 세부 추진계획을 보고할 방침이다. 건교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외부 기관에 검토 용역을 줘야 하고 최소한 5억원 이상 드는데 예산이 없다"며 "기획예산처에 사정하든지, 아니면 다른 예산을 전용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경남 밀양과 가덕도 등이 신공항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공사비만도 총 10조원(인천공항은 8조원) 이상 드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남 무안공항 확장에 대해서도 건교부는 "(확장 공사) 착공이 올해 어려워도 용지 매입과 설계는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건교부는 무안공항의 하루 비행기 운항 편수가 2,3편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도 수요가 없어 당초에는 무안공항이 개항하면 인근 광주공항은 폐쇄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광주가 반발해 이것도 무산된 상태다.

◆"있는 공항도 놀리는데…"=현재 국내의 공항은 모두 18개다. 15곳이 운항 중이고, 2곳은 건설 중, 1곳은 건설 예정이다. 무안공항과 울진공항은 2005년 개항하려다 비행기 수요가 없어 개항이 계속 미뤄져 왔다. 김제공항은 400억원을 들여 부지는 매입했지만 착공 날짜도 못 잡고 있다.

운항 중인 15개 공항 중 흑자를 기록한 곳은 인천.김포.김해.광주.제주 등 다섯 곳뿐이다. 나머지 10곳은 적자다. 강원도 양양공항은 128억원, 전남 여수공항은 55억원 등 지난해 적자액은 396억원이다. 무안과 울진공항이 개항되면 적자폭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통연구원 관계자는 "지방 공항들이 만성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또 다른 신공항 추진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말했다.

이영혁 항공대 교수도 "광주공항과의 갈등도 해결하지 못한 무안공항을 확장부터 하겠다는 건 순서가 뒤바뀐 셈"이라고 지적했다. 행정의 비효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대 김광웅 교수는 "대통령이 지역의 민원사항을 들어주는 것은 필요하다"며 "하지만 현실적인 필요성과 타당성에 대한 정밀한 검토 없이 약속을 하면 행정 부처가 세운 계획이 뒤죽박죽 된다"고 말했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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