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6·25 화필로 증언|고바우 김성환씨 전쟁화 27점 월간미술에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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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의 현장을 생생히 증언하는「고바우」김성환씨(59)의 전쟁화첩이 40년만에 공개됐다.
이 화첩은 김씨가 전쟁발발 때부터 51년11월까지 1년여 동안 공산치하의 서울과 피란 과정 등에서 직접 목격한 혼란과 아픔을 형상화한 것이다.
김씨는 90점에 이르는 이 전쟁스케치를 40년간 비장해오다 최근『월간미술』6월 호를 통해 세상에 선보였다.
『월간미술』은 6·25 특별기획「가슴만 움직이고 있었다」에서 김씨의 스케치 90점 가운데 대표적 작품 27점을 컬러화보로 싣고 김씨의 회고담과 작품에 얽힌 얘기를 덧붙였다.
김씨는『그 동안 내 작품들을 구입해 잘 보존·전시해줄 곳을 찾아왔으나 마땅한 기회가 없어 지금까지 미뤄왔다』고 밝히고『이번 지상공개를 계기로 적당한 수장가가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들은 비록 미술사적으로 높이 평가받을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전쟁기록화보다 현장감이 있는 생생한 기록화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김씨 자신도『40년 전 작품인데다 종이와 물감이 저질품이어서 전체적으로 치졸하지만 생생한 분위기와 기록성에 대해선 자부심을 갖는다』고 밝혔다.
이 작품들은 김씨가 당시 그림수업을 쌓고 있을 때라 크로키·스케치·만화·동양화·동화 화풍 등 여러 가지 표현수법이 쓰였다.
6·25발발 당시 김씨는 옛 학제의 경복중학교 졸업반학생이었다. 그러나 1년 전부터 연합신문에 『멍텅구리』라는 만화를 연재했고 월간 『화랑』과 주간 『만화뉴스』의 기자직함도 지닌 신인만화가였다.
당시 서울 정릉에 살던 김씨는 6월27일 저녁『역사의 회오리를 한강의 스케치북에 담아둬야겠다』는 생각에 뒷동산에 올라 포성이 울리는 의정부 쪽을 바라보았다.
가랑비를 맞으며 미아리 공동묘지 너머 보이는 흰 포연을 그린 것이 바로 6·25화첩의 첫 작품인『6월27일 저녁』이다.
그는 이후 공산치하의 서울에 머물거나 고향인 개성을 걸어서 오가며 체험하고 목격한 사실을 스케치북에 담았다. 특히 그림을 그리기 위험한 상황에서는 작은 수첩에 연필로 담았다가 집에 돌아와 스케치북에 완성시키기도 했다.
서울에선『공산군의 서울입성』 『낙오병 수색』 『서울대의대 뒷마당의 시신들』 『을지로·화신 앞의 주검들』 『수복된 서울의 공산군포로』장면 등을 담았다.
또 개성을 오가며 『개성 역을 공격하는 제트기』 『폐허가 된 봉일천리』 『쌕쌕이의 출현』등을 그렸다.
특히 비참하게 숨진 국군의 모습을 담은『끝내 숨진 무명용사』(50년6월28일 정릉 청년단 지부 지하실에서)와 폐차에서 생활하는 거지부자를 그린『호화주택이 생긴 걸인 부자』(50년10월11일 한남동에서)등은 무거운 감동과 신선한 해학을 보여준다.
김씨는 서울이 수복되자 국방부 정훈국 미술대에 들어가 총탄이 빗발치는 최전선까지 누비며 기록화를 그려 군 기관지 『웃음과 병사』에 실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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