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가구 28%가 별거-가족의 기능 변화·가치관 진단 학술 발표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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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급속한 산업화의 진전은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다. 이에 따라 우리 생활의 기초 단위인 가족의 형태와 기능·역할 분담도 전통적 개념과는 크게 달라졌다. 이상 교육열은 극단적 「가족 이기주의」를 불러 오히려 사회 발전을 저해하기에 이르렀고 결손 가족 증가는 청소년 범죄를 불렀다. 직장과 자녀 교육을 위한 비동거 가족도 28%나 증가했다.
이처럼 심화되고 있는 「가족」의 기능 변화·가치관의 혼란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기 위한 학술 발표회가 한국가족학회 (회장 최홍기 서울대 명예 교수·가족사회학) 주최로 지난달 31일 연대 알렌관에서 열려 주목을 끌었다.
이번 학술 발표 대회는 「한국의 사회 문제와 가족」이란 주제를 ▲가족과 직업 ▲가족 기능과 교육 ▲가족과 범죄 등 5개 부문으로 나누어 변모하는 사회 속에서 「가족」이 갖는 기능과 문제들을 토론했다.
성신여대 박숙자 교수는 「가족과 직업」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산업 사회로의 진전에 따라 나타나는 가족의 변화 중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직장 생활 때문에 빚어지는 비동거 가족의 급증과 여성의 경제 활동 증가에 따른 취업모 증가를 들었다.
한국보건연구원이 지난해 표본 조사한 것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는 28%가량의 가족이 각종 원인에 의해 비동거 가족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거하지 못하는 가족원의 이유로는 취업이 55.2%로 제일 많았고 취학이 17%, 군복무 12.5%, 구직이나 학업 준비 등 기타가 15.3%를 차지했다.
또 성별이나 거주 지역에, 따라 비 동거 이유도 크게 다르게 나타나 농촌 지역은 미혼자의 취업 및 취학이 70%이상인 반면 도시에서는 기혼자의 직장 생활에 따른 남편의 비동거 경우가 제일 많았다.
그러나 자녀의 취학 (교육)을 위해 지방 도시 근무의 남편만 둔 채 부인과 자녀가 대도시로 나온데 따른 비동거도 매우 많았다.
직장에 따른 비동거는 70년대엔 중동 취업으로 대표됐지만 최근엔 대도시에 집을 둔 가장이 직장 때문에 지방으로 가있는 「주말 부부」 형태가 대부분이다.
이같은 현상은 지방에서의 대규모 산업체 육성에 따라 국내 각 지역간 노동력 이동이 잦아지고 교통수단이 발달했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려면 서울 등 대도시에 편중된 고등 교육 기관을 과감히 지방으로 분산하고 지방 대학 출신자들의 정책적 채용 확대로 서울로만 모여드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이화여대 김재은 교수는 「가족과 교육」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현대의 가족은 전통적으로 강조돼왔던 생식을 통한 가계 계승 기능이 약화되고 교육을 통한 자녀의 사회화 기능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의 순조로운 출세를 위해서라면 무조건에 가까운 헌신을 한다.
그러나 이같은 부모의 헌신적 자녀 교육은 「극단적 가족 이기주의」를 낳게되며 가족·구성원의 이익에 관계되지 않는 공동체의 일에는 철저한 무관심을 초래한다. 이 때문에 극단적 가족 이기주의는 사회의 발전을 오히려 저해하는 새로운 부조리로 나타난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따라서 자녀가 가족의 명예와 지위 확보를 위해 뛰는 대표 선수라는, 그래서 공부만 잘하면 다른 모든 책임과 의무는 면제되는 현실을 부모들은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가족이 갖는 주요 기능 중 하나인 안정화 기능도 도시화·산업화의 급진전으로 집에 머무를 수 있는 절대 시간이 줄어들어 크게 약화됐으며 경제주 체로서의 가족 기능은 이제 소비 기능만 남게 됐다.
경원대 한인섭 교수는 「가족과 범죄」 주제 발표를 통해 우리 사회는 남자 중심의 각종 문화 유산이나 잘못된 관습이 가정 내에서 아내나 자녀에 대한 가장의 폭력, 사회 문제가 되는 청소년 범죄들을 상당 부분 조장, 또는 용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사랑의 매」「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 「여자와 명태는 때릴수록 맛이 난다」는 발상에서 나오는 각종 행위는 자녀들로 하여금 가정 폭력의 정당화 논리를 가르치고 남편 중심의 전횡과 남편의 가정내 폭력을 정당화시켜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사회의 변천에 따라 옛날에는 형태적 결손 가정이 문제가 됐지만 요즘엔 외형상의 가족 결손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가족 기능상의 결손이라고 한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다만 형태적 결손 가정 출신의 청소년 범죄가 통계상 많은 것은 보호·변호해줄 수 있는 보호자가 없기 때문에 국가의 형사제재가 바로 결손 가정 청소년 범죄자에게 가해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편 가정에서 행해지는 남편의 폭력에서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서비스의 조직화와 폭력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 여론의 조성이 시급하다고 한 교수는 강조했다.
가정은 이제 더 이상 가장만을 위한 성이 될 수 없고 이웃과 지역 사회, 나아가 국가의 복지·통제의 범위안에 있음을 가족 성원은 물론 사회와 국가 모두가 인식할 때 가정내의 폭력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석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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