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력도 없이 굿판만 벌일땐가/김병주(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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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광산학은 자살적 학문이라는 농담같은 말이 있다. 광산기술의 발달로 채굴수확이 높을수록 광물자원이 조만간 고갈이 날테니까. 같은 논리로 보면 경제학의 성격도 유사하다. 경제이론의 연구 및 그 응용이 왕성해 인간의 모든 욕망이 충족된 다음에는 경제학은 무용지물이 될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인간의 욕망은 계속 늘어나고 다양해지고 있고 이에 비해 충족시킬 자원은 항상 부족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사회에서는 유한한 자원의 제약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이 서로 떠넘기면 자원이 무한히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세대간 업무분담 필요
정부와 여당측에서 2백만호 주택건설,서해안고속도로,경부고속전철등 각종 공약사업을 추진하기에 바쁘다. 고속전철의 경우 충북 지선까지 고려하는 것을 보면 놀라운 발상이다. 그 어느 하나 인력부족,자재수급차질,물가상승 등의 무리없이 추진될 수 있다면 모두 필요한 사업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할 자원이 있는가. 물론 있을 수 없다.
일정한 시점에서 자원은 일정하다. 그러나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재충전되거나 창조되는 자원은 있다. 인력충원,농토의 해갈이 경작,자금회전등이 그 예다. 이렇게 보면 단기적으로 넓은 의미의 자원이용에 우선순위를 선정하고 세대간에 업무를 분담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요즘 어려운 시국의 원인중 하나로 세대간의 갈등을 꼽는 진단을 받아들인다면 6·25와 보릿고개의 경험을 가진 구세대들이 새세대들에 많은 과제를 넘겨주어 세대간에 책임을 분담하는 장기구상이 필요하다. 기성계층이 자기세대중에 빈곤을 없애고 주택부족을 대폭 줄이고 사회간접자본을 완비하고,통일과제까지도 완수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다음 세대에도 일의 성취에서 짜릿한 충족감을 맛볼수 있도록 기회를 남겨둘 필요가 있다.
통일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지금 당장 통일이 왜 필요한가? 그것은 무조건 순종해야할 하나의 신앙일 수 없다. 요즘 적어도 필자에게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듣기 거북한 노래중 하나로 되어가고 있다.
지금 당장 통일로부터 기대되는 실익,평화의 배당금은 무엇인가? 통일이후 7천만 인구,22만평방㎞로 늘어남에 비례해 국력이 신장되는가? 최근 일본의 자위대 해외파견에서 보듯 우리는 통일이후에도 아마 오늘날 한국군 수준 또는 그 이상의 군비를 계속 유지해야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통일논의도 돈 있어야
우리보다 부강한 독일의 통일에서 보듯이 통일이후 상당기간 어쩌면 남한이 해마다 국민총샌산의 10%정도의 지원을 북쪽에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우리의 소망대로 남쪽이 북쪽을 흡수하는 방식이 수용될 경우에도 말이다. 더구나 통일을 서두르다 보면 우리가 소망하는 통일방식이 먹혀들지 않게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의 정치·경제·사회적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우리의 방식을 관철하려면 우리의 상대적 경제우위를 현재의 몇배로 기르고 난 다음에 다시 통일을 거론하는게 좋을 것으로 보인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이같은 논의를 할 수 있는 입장에 이르게 된 것은 우리 모두가 지난 30년동안 다소간의 불만·불평을 안으로 삭이면서 묵묵히 일해 축적해온 경제력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소망이나 욕구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국민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안정기반구축이 불가결하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우리의 기업과 가계,고용자와 노동자 모두 경제자원의 유한성을 철저히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대기업들이 지금까지처럼 생산활동보다 부동산 사재기를 사업의 제일과제로 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역시 거시적 관점에서 유한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해치는 일이다. 가계의 과소비풍조 또한 시간에 걸친 자원 배분을 그르치게 된다.
마지막으로 요즘 쉴날없이 지속되는 시위와 파업행위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활동이 지속되는 것은 그간 축적되어온 국민경제의 여력이 뒷받침되니까 가능한 것이지 만일 국민의 경제력이 취약했던 20∼30년전이라면 최근의 시위나 파업으로 이미 국민경제생활은 파탄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국력신장이 당면 목표
요즘 「굿판」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고 있지만 웬만큼 사는 집이라야 굿판을 벌이고도 살림이 크게 기울지 않는다. 그러나 자원의 유한성이 말해 주듯이 아무리 잘사는 부잣집이라 하더라도 매일 굿판만 벌이다가는 드디어 재력이 거덜나는 날이 오고 만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소망,우리의 욕구를 간추려 정리해 우리의 꿈이 가장 소망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력을 키우는 과제다. 서로 책임을 떠넘겨 보아야 국력은 신장되지 않는다.
정부를 비롯해 국민 모두 자원의 유한성을 올바로 인식하고 욕구를 자제하고 성급함을 달래는 훈련이야말로 우리가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다.<서강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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