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말의 정치학] 11. 삼권(三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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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말의 기본적인 시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세가지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우리나라의 시제는 대개 받침에 따라 구별된다는 점이다. 아무 받침도 없는 '가다'의 동사원형에 'ㅅ'을 붙이면 '갔다'의 과거가 되고 'ㄴ'을 붙이면 '간다'의 현재가 된다. 그리고 거기에 'ㄹ'을 붙이면 이번에는 '갈 것이다'의 미래형으로 바뀐다.

삼권분립이라는 어려운 문제도 ㅅ, ㄴ, ㄹ로 가르치면 초등학교 학생이라도 알아듣는다. 사법은 신도 돌이킬 수 없다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다룬다. 그래서 그 담론은 했느냐 안했느냐를 따지는 'ㅅ'자 집이다. 반대로 국회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심의하고 그에 대비해 법을 만드는 일을 주로 한다. 미래의 담론인 'ㄹ'자 집이다. 그런데 행정부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일을 맡아 실행하는 'ㄴ'자형의 집에 속한다. 이 세 담론이 모여 나라의 집, 국가가 된다.

그런데 우리말의 형태는 과거 시제에 더 치중돼 있는 것 같다. 오고 있는 중인데도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버스가 왔다'라고 과거 시제로 말한다. 그리고 '왔다' '왔었다', 심하면 왔었었다로 시제를 세분한다. 실제로 어느 소설가는 '왔었었었다'라는 말을 만들어 쓴 적도 있다.

그러나 현재와 미래는 그렇게 겹쳐 쓸 수가 없다. 외국어를 배울 때에도 제일 헷갈리는 것이 미래 시제다. 단순 미래와 의지 미래가 다르고 가정법.조건법.접속법 등 까다로운 것이 많다. 대처 여사를 향해 "이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묻는 일본 총리를 향해 그녀는 화를 내듯 "어떻게 될 것이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고 물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것을 보고 바로 그것이 미래를 바라보는 동.서양 정치인의 차이가 아니겠느냐고 한탄한 정치 평론가도 있었다.

우리의 정치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것도 거의 모두가 과거 시제다. 그래서 정치인의 길은 로마가 아니라 재판소와 교도소로 통한다. 바늘이 걸린 구형 레코드판처럼 '했냐' '했었냐' '했었었냐'의 이 갈리는 그 시옷음만 들려온다. 이따금 당쟁과 정치보복의 무기로 등장하는 것도 바로 그 쌍시옷 받침의 덫이다.

과거청산이나 부패척결을 덮자는 게 아니다. 그런 것들은 평소에 법만 제 구실을 했다면 정치 이슈가 될 문제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치는 봄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묵은 눈은 절로 사라지고 얼음장은 힘없이 녹는다. 그런데도 겨울철에 그냥 주저앉아서 눈을 치자, 얼음을 부수자고 하는 바람에 서로의 뒤통수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3김 정치도, 386정치도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담론이 제각기 다양하게 살아 숨쉬는 삼권정치다. 과거를 넘어 미래의 담론으로 정치를 이끌어간 만델라 같은 정치지도자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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