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군 죽음을 보는 엇갈린 눈/최훈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3일 분신해 숨진 경원대생 천세용군(20)의 장례식이 진행된 9일 성남 경원대운동장에서는 천군의 죽음에 대해 우리사회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첫번째는 종교적 해석. 이날 장례식에서 대한성공회 총감사제인 정연우 신부는 천군을 위한 축복의 기도를 통해 독실한 성공회신자였던 천군의 죽음을 『하느님이 주신 귀한 생명을 보다 값지게 희생함으로써 이세상을 밝히려는 믿음의 발로』라고 의미지었다.
성공회측은 천군의 죽음을 예수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자기십자가를 지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한 「선교적차원」의 행위로 파악한 것이며 이의 성서적 근거로 요한복음 15장13절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큰 사랑은 없다」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성공회측은 『자결한 자에 대해서는 교회를 예식장소로 내주지 않는다』는 내부규정과 천군의 분신자살사이의 상충을 이러한 종교적 해석을 바탕으로 해결,천세용 요한에게는 이 규정을 적용치 않는다는 「특별관면」을 내려 대성당내에서의 영결미사를 허용한 것이다.
천군의 죽음에 대한 이러한 신앙적 해석과는 달리 이날 조사를 낭독한 백기완씨는 『천군은 죽지 않을 수 있었다』고 서두를 꺼낸뒤 『노정권이 민주화를 성실히 이행치 않아 천군이 이에 항거해 숨진 것이므로 천군의 죽음은 결국 정권에 의한 「타살」』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조사나 조시를 낭독했던 김종식 전대협의장과 재야인사등도 모두 입을 모아 『뇌물외유·수서비리 등에서 나타나듯 정권의 부도덕성과 사회의 정치·경제적구조의 모순이 결국 천군을 분신이라는 극한까지 내몰았다』며 천군의 「타살」과 이에 따른 정권퇴진 투쟁을 강조해나갔다.
한편 장례위원장인 문익환 목사는 개식사를 통해 『최근 생명경시풍조라느니 배후에 죽음을 사주하는 세력이 있다는 당국의 주장은 천군 등의 죽음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밝혀 일부의 「조직적 투쟁의 일환으로서 분신」이라는 주장을 비난했다.
한 대학생의 죽음에 대해 세가지 해석이 내려질 수 밖에 없고 그같은 시각의 차이가 좁혀질 수 있는 대화의 통로는 거의 없는 우리 사회­. 「대학생을 죽음으로 몰고간 사회모순이 있다면 무엇이며 해결의 바람직한 대안은 무엇인지」가슴을 열고,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는 날은 과연 언제일지 답답하기만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