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용의원 국회통일위원장/평양 IPU총회 참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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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사람마다 “통일… 통일…”/건강한 김일성 어딜가나 “우상”
나는 지난달 27일부터 5일까지 8박9일간 제85차 국제의회연맹(IPU)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평양은 단순히 북한의 수도가 아니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평양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해도 자니침이 없는 그런 곳이었다. 개성으로부터 평양에 이르는 단선철도의 차창밖으로 펼쳐진 북녘의 산하가 다락밭으로 이어진 벌거숭이의 연속이었던 반면 평양은 더할나위없는 경관을 지닌 하나의 작품같았다.
주암사 초대소의 시설물은 낡았고 불비했지만 우리 일행을 맞는 북녘의 마음은 그 모란봉 경관 만큼이나 푸근한 것이었다.
평양에서의 첫밤을 왠지 모를 설렘속에서 지낸 다음날 가톨릭신자인 나는 동료 김현욱의원과 함께 장충성당에서 남북한 신자합동미사를 드렸다. 북녘 여신도들의 흐느낌속에서 진행된 미사는 감동적이다 못해 감격적이었다.
북녘의 신자들은 정말 진지했다. 그들이야말로 온갖 핍박속에서도 신앙을 지켜온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미사가 끝난후 평양 대성동에 산다는 「이레나」라는 영세명을 가진 중년부인등이 김수환 추기경을 꼭 뵙고 싶다고 울먹일때는 나도 복받쳐오르는 느낌을 감추지 못했다.
28일 저녁 만수대의사당에서의 남북한 1개 대표단의 첫 대면은 출발부터가 긴장된 것이었다. 당초 윤기복 북측통일정책 심의위원장의 만찬초대형식으로 이루어진 첫 대면이 북측의 기습적인 정치공세로 긴장된 양상을 돌출시켰던 것이다. 팀스피리트훈련중지,불가침선언문제 등을 제기하며 위원장은 『남침위협이라는 있지도 않은 유령을 만들어 사람을 놀라게 하지말라. 우리는 남침능력이 없다. 남에서도 북침을 생각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이종구 국방장관의 북한 핵시설 응징관련 발언을 성토했다. 남북한 대표간에는 1시간30분이 넘게 공방과 설전이 계속되었지만 뒤이은 만찬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29일 오전 만수대의사당에서 있은 IPU총회개막식에서 받은 가장 큰 인상은 북녘땅에서의 김일성 주석의 존재와 위상에 대한 것이었다. 각국 대표단이 놀라다못해 의아하게 여길만큼 열광적인 박수속에서 등장한 김일성주석은 그 특유의 8자걸음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통해 그의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날 저녁 주석궁에서 있은 만찬석상에서도 그는 자그만 술잔에 술을 담은채 탁자를 돌며 각국대표들과 족히 70∼80회가 넘게 잔을 부딪쳤다.
그의 건강함을 또다시 입증하는 장면이었다. 아직도 여전히 김일성 주석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김일성대학을 방문했을 때 곳곳에 나붙은 「김일성 주석께서 다녀간 방」이라는 표지나 「김일성 주석께서 보내주신 선물」들로 가득찬 방을 보면서,심지어는 승리거리에 있는 제일백화점의 시계매점에 내걸린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이 친히 다녀가신 매대」라는 붉은 팻말을 보면서 북녘땅에서 갖는 「김일성」이라는 이름석자의 의미가 결코 우리의 상식,우리의 잣대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북녘땅은 풍요롭지는 못했다. 그러나 척박하다고만은 말할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특히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북한의 전통음식들이었다. 「호박단떡」은 별미였다. 그들은 다양하고 풍부하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가용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전통음식을 개발하고 있었다.
단고기요리(개고기요리)도 일품이었다. 단고기요리를 우리의 「보신탕」쯤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이미 북녘땅에서는 남녀노소 가릴것없이 즐기는 전통음식의 대명사였다.
내가 만난 북한의 「인민」들은 순진하고 순수했다. 그러나 한결같이 통일이야기가 나오면 그들은 다른 사람처럼 반응했다.
인민대학습당에서,제일백화점에서,김일성대학에서,대성산유원지에서,학산협동농장에서,그리고 금강산여관에서 만났던 북녘사람들은 한결같이 임수경양과 콘크리트장벽을 말했고,그것을 말할때 보여준 그들의 모습은 형언하기 힘들 만큼 격렬했다.
또한 북측의 정부고위관계자로부터 기자,안내원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한결같이 『독일처럼 남과 북을 통일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북조선은 동유럽처럼 되지 않는다. 남조선이 돈좀 벌었다고 독일식 통일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망상이다』는 식으로 때론 흥분해서,또 때론 결연하게 말했다.
가위 구호의 천국이라고 할만큼 많은 구호들중에서 더많이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식대로 살자』,『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말 만이 아니라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8박9일의 북한체류기간을 통해 나는 그 북녘땅을 보다 많이 이해해보고자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역부족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이해 자체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확인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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