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고전파 경제학」꽃피운 지침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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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D. 리카도 저『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흔히 『정치 경제학 원리』로 불리는 l817년에 그 초판이 간행된 리카도(D. Ricardo : 1772∼1823)의『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 : 정윤형 옮김·비봉 출판사·1991)는 완숙한 리카도 경제학의 진면목을 보여줄 뿐 아니라 전성기 고전파 경제학의 도래를 과시하는 저작이다.
리카도는 27세 때 우연히 온천 휴양지에서 애덤 스미스의『국부론』을 읽게 되는데, 이것이 그가 경제학과 만나는 최초의 계기였다. 그 후 10년 뒤인 1809년 한 신문에 익명으로 지금 논쟁에 관한 투고를 한 것을 시작으로 1823년 사망할 때까지 경제학자로서의 삶이 약 13년간 이어진다.
1809년에서 1813년까지 그의 연구는 대체로 당시의 지금 논쟁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 논쟁은 나폴레옹 전쟁 중의 전시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것이었는데, 리카도는 일종의 화폐 수량설 관점에서 통화량의 확대를 그 원인으로 보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의 학문적 관심은 점차 곡물 법과 관련된 광범한 경제 문제로 옮겨가게 되면서 고전파 경제학의 토대가 되는 그의 이론 체계가 확립된다. 이 시기의 주요 저작이 바로『이윤론』과 『정치 경제학 원리』였다.
1846년까지 존속한 곡물법은 흉년을 제외한 평시의 곡물 수업을 제한하는 국내 농업 보호 정책이었다. 리카도는 곡물법이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고 이윤을 낮춤으로써 국내 산업에 불리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파악해 이에 반대했다.
1815년의『이윤론』에서 그는 곡물 가격의 상승이 이윤율에 끼치는 영향을 이론적으로 분석한다. 여기서 그는 수확 체감의 법칙과 임금 생존비설을 이용, 곡물 가격 상승-노동자 생계비 상승-임금률 인상-이윤율 저하 및 지대 인상으로 이어지는 논리적 인과를 추적한다. 이론 구조상으로 볼 때 이것은 가격 변동에 따라 생산물의 계급간 분배가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밝히는 분배 이론인 것이다.
이후 곡물 모형으로 불리고 또 스라파(P. Sraffa)에 의해서 그 이론적 의의가 되살아나게 되는 이『이윤론』의 모형은 한 나라 경제를 거대한 곡물 농장으로 보아 생산의 투입과 산출이 모두 곡물이라고 단순화함으로써 가치 변동의 문제를 회피한「가치론 없는 분배 이론」인 것이다.
또한『이윤론』에 나타난 리카도의 견해는 스미스의 생산비설과 이윤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맬서스가 대변한 스미스 이론에 의하면 곡물 가격의 상승은 임금 인상 생산비와 생산물 가격 상승으로 나타날 따름이지 이윤율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즉 이윤율은 자본축적과 관련된 자본의 크기에 따라 임금 변동과는 관계없이 그 독자적 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윤론』과『정치 경제학 원리』, 그리고 맬서스와의 서신 교류에 나타나는 리카도의 모든 이론적 노력은 반면 임금 인상이 이윤율의 하락만을 초래하고 상대 가격은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스미스의 생산비 이론과 분배 이론의 그릇됨을 밝히는데 집중되고 있다.
이는 또한 경제학을 국부의 속성과 원천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보는 스미스 전통과는 달리 「산업 생산물의 계급간 분배를 규정하는 법칙의 탐구」를 경제학의 과제로 보는 리카도의 관점과도 밀접히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의『정치 경제학 원리』는 분배 이론을 노동 가치론의 토대 위에 세운『이윤론』의 확장인 동시에 스미스와의 치열한 이론적 대결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가치론에서 리카도는 스미스의 혼란과 오류를 제거하고 객관적 노동 가치론의 가능성을 연다. 스미스는 지배 노동 가치론과 투하 노동 가치론간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생산비 이론으로 나아가 후자를 전제로 이윤·임금·지대 등에 대한 분배 이론을 펼친다.
즉 스미스에 있어서는 가치의 결정 원리와 분배를 규제하는 법칙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리카도는 투하 노동 가치론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한 상품의 가치, 즉 그것의 다른 상품과의 양적 교환 비율은 그「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의 상대적 크기에 의존」한다는 투하 노동 가치론에 따라 생산물의 가치가 결정되면, 이제 생존비설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고 이 생산물 가치에서 임금을 뺀 나머지가 이윤으로 분배된다.
그러므로 노동 투하량의 변동이 뒤따르지 않는 한 임금 인상은 이윤율의 저하만을 가져오지 상품 가치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리카도는 노동 투하량이 그 상품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이 법칙에 대한 예외를 발견한다.
이것은 이후 마르크스에 의해 일반 이윤율의 형성에 따른 가치의 가격으로의「전형 문제」로 정식화되는데 리카도는 이 예외에도 불구, 가치 법칙은 여전히 대체적으로 관철되는 것으로 파악한다(이 예의 때문에 리카도의 가치론은 93% 노동 가치론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여기서 그는 임금의 변동과 고정자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상대 가치가 변하지 않는 상품의 조건을 찾는 작업으로 나아가게 된다. 즉 마르크스와 밀을 제외하고는 19세기의 경제학자 어느 누구도 문제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던 리카도의 키메라(Ricardo's chimera)로 알려진「불변의 가치 척도」문제에 사망 직전까지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 후 이 문제는 스라파에 의해 해결의 한 방식이 제시된다.
스라파는 불변의 가치 척도를『이윤론』의 곡물 모형에서 착안한「표준 상품」개념으로 재구성한다. 이「표준 상품」은 스라파 경제학을 태동시키면서 리카도의 부활을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그 리카도는 노동 가치론이 없는 초기 리카도에 기초한 재해석인 것이다.
『정치 경제학 원리』에 담겨 있는 리카도의 이론 체계는 그대로 19세기 전반부 고전파 경제학의 근간을 이루게 되면서 고전파 경제학의 세계가 활짝 꽃피게 된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그의 경제학은 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고전파 노동 가치론의 규범적 해석에서 출발하는 리카도 사회주의자들이 등장하고, 또 리카도 비판을 통해 마르크스의 경제학 체계가 성립되지만, 다른 한편 리카도의 노동 가치론이 점차 수요 공급 이론에 의해 대체되면서 고전파 세계가 해체되고 신고전파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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