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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김 총재 요담이후의 기상도 「대권」암중모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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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정계는 강경대군 치사사건 같은 돌출사고에 휘말려 멈칫거리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노태우 정권이후를 겨냥한 탐색과 책략, 그리고 권력게임이 치열하다.
지난달 23일의 노 대통령·김대중 신민당총재의 단독요담과 그 다음날 있었던 김윤환 민자당사무총장의 민자당조기전당대회시사 발언 같은 움직임이 그것을 잘 방증한다.
두 지도자간 25분간의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전격 요담내용은 각자 소신의 반복에 머물렀다고 하지만 장기정국구상에 대한 정치적 탐색과 함축을 교환하고 있어 무성한 추측이 난무해 흥미가 더해지고 있다.
이 자리에서 거론된 노 대통령의 「3김 역할론」, 김총재의 「노 대통령의 민자당적 이탈」주장은 93년 차기구도와 연결된 것으로 의미가 부여되는가 하면 김영삼 민자당대표 측에선 김 총재가 당 내분을 유도하고있다고 경계하고 있어 세 사람간의 미묘한 3각 관계의 측면도 엿보인다.
여기에 노 대통령과 김 대표 사이의 교량역을 자임해온 김윤환 민자총장의 「조기전당대회 가능성」발언까지 맞물려 정치권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고있다.
노·김 요담에서 김 총재가 「중요한 의견」으로 제시했다는 문제의 「노 대통령 민자당적 이탈」에 이날 요담의 가장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는 것.
『노 대통령의 잔여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개인자격으로 내놓았다』는 이 대목은 물론 김 총재의 오랜 주장이다.
그동안 김 총재는 노 대통령이 민자당을 떠나 초당적 위치에서 국정을 수행하고 선거의 공정관리를 해야만 「민주주의를 한 대통령」으로 퇴임할 수 있다고 강조해봤다.
김윤환 사무총장은 『대통령선거 때 초당적 위치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고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지만 당내일부에선 당적이탈로 노 대통령의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을 축소시켜 「양김 구도」(김영삼·김대중)를 고착시키겠다는 시사로 파악하고 있으며 김 대표의 민주계는 『당의 계파간 갈등을 부채질하려는 의도』라고 묵살하고 있다.
그러나 민정계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후계자로 김대표(YS)를 지명할 의사가 있는지를 타진하는데 이 주문의 복선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민정계의 한 핵심중진의원은 『당적이탈은 노 대통령이 맡고있는 총재직을 내놓으라는 얘기로 이는 YS측에서 요구하는 조기전당대회에 의한 총재직 이양과 맥락이 비슷하다면서 노 대통령이 차기를 YS에게 넘길 것인지를 우회적으로 물어보는 것』이라고 주장.
따라서 당적이탈을 『비현실적 유토피아(이상)』라고 일축한 노 대통령의 답변을 후계구도의 조기가시화를 안한다는 의사표시로 김총재가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민정계측이 유리하게 해석.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부분이 내각제와 3김 역할론의 동시거론. 노 대통령은 『내각제가 바람직하지만 국민이 원치 않으면 하지 않는다』고 말해 이제까지의 수준을 넘지 않고 있으며 김 총재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온 수동적인 것이다.
김총재는 노 대통령이 임기 중 내각제추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느낌」이라고만 밝혔다.
짧은 시간과 여러 가지 대화소재로 미뤄 내각제문제에 깊숙한 얘기를 나누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3김씨 역할론이 곁들여졌기 때문에 원론수준 이상의 의미파악에 신경을 쓰는 일부 관측도 있다.
노 대통령은 『3김씨가 물러가야 한다는 국민의 소리를 많이 듣고 있으나 지난 총선을 통해 국민들이 이들에게 역할을 맡겼으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했다.
3김씨 모두에게 역할을 「보장」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이 발언은 전부 아니면 전무인 현 대통령직선제로는 실천 불가능하고 내각제의 틀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내각제하의 3김 위상과 관련된 모종의 제안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3김 역할론은 김총재도 차기경쟁대열에 포함됨을 인정하는 노 대통령의 유화 제스처라는 해석이다.
김 총재가 딱부러지게 내각제를 반대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노 대통령의 의사를 물은 접근태도도 설왕설래되고 있다.
그 때문에 김총재가 내각제로의 회귀, 내각제로 가는 통로를 남겨놓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구민정당 3역 출신 중진의원은 『내각제가 14대 총선 이후는 더욱 어렵다는 게 최근 청와대의 새로운 정국판단으로 알고있다』며 『노 대통령이 마련한 자리에서 간단하지만 농축된 메시지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계측에선 내각제에 대한 의견교환은 극히 일부분이며 의미를 부여할만한 것이 못된다고 일축하는 경향이다.
김 대표의 핵심측근은 『노 대통령은 지난달23일 김총재와의 회담 이후 즉각 김대표에게 전화해 김 총재와의 대화내용을 소상히 설명했다』며 『내각제부분에 대한 김총재의 내용공개는 민감한 부분을 부각시켜 당내 내각제논쟁을 야기, 계파간 갈등을 증폭시키려는 고도의 술책』이라고 풀이했다.
김총재가 말하는 내각제에 대한 「느낌」은 이를 뒷받침할만한 노 대통령의 새로운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느낌」의 신뢰도와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게 민주계 설명이다.
김 대표측은 김총재가 회담내용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중요한 의견」대목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청와대에 연락, 『중요한 의견운운으로 쓸데없는 추측을 유발시키려 한다』고 내용공개를 종용했고 청와대측도 즉각 이를 공개한 점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라고 덧붙인다.
그런데도 양김씨는 26일 전국교육자대회에 나란히 참석, 경쟁과 공존의 묘한 관계를 보이면서 양김 구도 구축에 계속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윤환 총장이 24일 외신기자회견에서 『총선(92년2월께)전 조기전당대회가 총선승리에 유리하다면, 또 의원 절대다수가 원한다면 고려될 수 있다』고 말해 그 진의에 대한 여러 해석이 설왕설래되고 있다.
김 대표쪽에선 『조기전당대회의 필요성을 김총장이 인정한 증거』라고 크게 반색하고 있고 민정계측에선 『김총장이 친YS인물이라고 하지만 민정계다수의사를 외면, 평지풍파를 일으킬 리 없다』며 전당대회의 자유경선 운영에 비중이 있다고 각기 유리하게 해석.
특히 『김 대표가 후보로 부상하고, 민정계에서 뉴 리더가 나타나지 않으면 노 대통령의 결정이 대권후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김 총장의 견해는「노 대통령에 의한 후계지명」을 노리는 YS쪽 구도와 유사한 측면이 있어 주목을 끌었다.
김 총장은 『노 대통령, YS와도 이 부분에 대해 사전 대화가 없었다』고 토로했고 민주계 핵심도 이를 부인해 향후 여권동향이 한층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김 총장이 외신회견을 빌려 관측기구를 띄운 것으로 보이는 이 발언이 오는 가을쯤 가시화될 여권내부상황의 한 형태일지 여부는 지켜봐야겠지만 향후정국을 재는 한 자(척)로 기능하고 있다. <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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