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재야(정치와 돈:5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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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돈·돈·돈… 현실 정치벽 실감/“창당대회 안하면 안되나”투정도(주간 연재)
이념과 논리를 투쟁의 무기로 삼아왔던 재야는 제도정치권에 들어와서도 그들의 정치목표를 ▲민주대 반민주 구도로 볼 것이냐 ▲보수대 진보의 구도로 볼 것이냐로 논쟁을 하고있다.
그러나 정치권에 진입한 신민당·민주당·민중당 세갈래 재야가 공통적으로 겪는 고민은 바로 돈 문제다.
이우정 신민당 수석 최고위원은 9일 통합전당대회 직후 『기성정치인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고 말하고 『그중 제일 큰 것이 돈과 계보문제』라고 토로했다.
재야정치인들은 너나없이 기성 정치풍토의 「돈중심·계보중심 문화」에 전선을 그어 저항할 것인지,어쩔 수 없이 그 한계를 수용할 것인지의 현실 정치적 고민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민주 연합그룹의 김부겸씨(35·민주당 동작갑위원장)는 19일 보증금 1천5백만원에 월임대료 65만원의 24평짜리 지구당 사무실 개소식을 가졌다.
집기·시설물까지 포함,사무실을 내는데만 2천만원이 들었고 매달 상근직원 3명에게 지급되는 1백만원과 각종 공공요금을 계산하면 사무실 유지비만 꼬박 2백만원이 나가게 된다.
지역활동을 위한 자신의 최소활동비를 1백만원으로 잡고 있으니 월 3백만원은 들게 되는 셈인데 부인이 운영하는 독서실 수입은 가계비 충당에도 빠듯한 형편이어서 소요경비는 거의 전액을 외부지원에 의존해야 한다.
28일로 잡혀있는 지구당 창당대회에 8백만원쯤 들게 되고 광역의회 의원후보에 대한 자금지원도 엄두를 못내고 있는데 내년초로 예정된 총선대비자금을 비축할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는 것이다.
김위원장은 『막말로 재야시절엔 돈이 없으면 집안에 틀어박혀 천장만 쳐다보고 있으면 됐지만 이제 공당의 책임있는 정치인으로서 하루도 빠짐없이 지역민을 찾아다니지 않을 수 없다』며 『움직이면 돈이라는 말이 실감난다』고 현실정치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재야때 여기저기에서 부정기적으로 돈을 얻어쓰던 습관을 버렸다고 했다.
대신 친지·동창등 1백여명으로 후원회를 조직해 형편에 따라 월 1만원·2만원·5만원의 3개 단위 후원금을 온라인으로 받아 2백만원의 고정수입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사무실 개설비용중 1천만원은 집을 저당잡혀 은행빚을 냈다.
김위원장 같은 경우는 그래도 오랜 재야경력을 통해 마당발이라 할만큼 넓은 지면이 있어 나은편이지만 서울대 학생회장 출신인 김민석씨(29·민주당 양천갑 위원장)는 학교동창이래봐야 회사 대리급이 고작이어서 『지구당 창당대회를 안하면 안되는거냐』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원혜영씨(민주당·41·부천 중구)는 70년대를 옥살이로 점철했던 투쟁가였지만 80년에 「당장 먹고 살일이 깜깜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풀무원(주)이라는 무공해식품 고급업체를 만들어 사업에 성공한 드문 케이스.
그는 6년간의 사업으로 풀무원을 이 계통에서 독보적 위치로 끌어올려 놓고 86년 다시 운동권에 뛰어들어 정치권에 진입한 탓인지 비교적 자금운용에 여유가 있다.
재야 정치인의 공통적인 특징은 일체의 화환이나 결혼등 경사에서 부조를 안하는 대신 조사의 경우 직접 찾아가 얼마간 부조를 한다는 것이다.
리더가 아랫사람에게 촌지나 활동비를 제공하는 일은 없다.
능력도 없지만 돈줄로 연결되는 「보스­꼬붕」의 전통적 정치세계의 풍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이 서로를 견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련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부영 부총재는 민주연합의 합동후원회를 만들어 정치자금을 공동수입,공동지출하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
현재 정치자금법은 선거때가 아니면 원내교섭단체를 갖지 못한 정당의 원외지구당위원장의 개인후원회 설립을 금지하고 있어 민주당은 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국회에 내놓고 있다.
재야 정치인의 돈사정은 기성 정치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궁핍하긴 하나 이부영·이재오(민중당 사무총장)·장기표(민중당 정책위원장)씨 같은 자생력 있는 조직활동가출신 정치인들은 상당한 정도의 자금모금체계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실제로 민통련·전민련 간부시절 조직의 행사비나 운영비를 위해 상당액수의 자금을 끌어들인 실력파들인데 주변의 변호사·교수·의사·회계사 등 친지들로부터 월1천만원대의 자금동원능력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부총재는 민주당 지도부로서 당장 월 2백만원의 당비를 내고 있으며 민중당의 이·장씨는 중앙당비 20만원에다 지구당에 「여성교실」「시민교육 프로그램」등을 따로 정기개설해 추가부담이 그만큼 요구되는 인사들이다.
신민당의 이우정 수석최고위원은 김대중 총재가 승용차 한대를 특별배려키로 했는데 최근 신민당에 입당한 신민주 연합측 재야인사들의 자금실력은 조직활동가 출신인 민중당·민주연합파측과 비교해 뒤떨어진다는게 중론이다.<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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