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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G10으로 ③ 건보 재정을 건강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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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파킨슨병을 앓던 정순자(79)씨가 병원으로 급하게 옮겨진 건 지난해 추석 다음날 새벽. 추석 때인데도 응급실은 만원이었다. 엿새 뒤 암 진단을 내리며 퇴원하라는 담당의사의 은근한 권유를 뿌리치고 하루 부담이 20만원인 1인 병실에 입원했다. 16일째 되는 날 정씨는 사망했다. 전체 진료비 793만원에 환자부담은 354만원. 아들 재현(48)씨는 "2주 입원에 집안이 휘청거린다면 그런 건강보험은 무슨 소용이 있나요?"라며 만만치 않은 부담을 하소연한다.

의사.병원.환자.정부 누구에게도 만족스럽지 않은 게 의료서비스다. 그중에서 건강보험은 말 그대로 만인이 기대를 접은 제도다. 의사는 보험수가가 낮다고 하고 (2003년 이후 4년 사이에 병원이 3.3%밖에 늘지 않았다), 환자는 보험환자라고 병원에서 사람 취급 못 받는다고 하고, 정부는 날로 늘어나는 부담금이 늘 부담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팽배한 불만, 그 가운데에 경증 질환에 대한 서비스가 있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는 그 부수물일 뿐이다. 2005년 한 해 보험환자들은 4억 번 이상 병원을 찾았다. 그중 98.5%가 외래진료다. 중증 환자의 검진 외래를 제하고도 한 해 3억9000번 병원을 출입한 셈이다. 외래진료의 대부분이 편도염.기관지염 등 가벼운 병의 환자라는 얘기다. 경증 진료에 대한 가입자 부담이 너무 싸서 그렇다.그러다 보니 외래 급여 비용으로 한해 7조6000억원이 들었다. 전체 병원진료 급여의 59%였다. 그 결과 90년에 3640억원이던 정부부담금이 2005년에 3조7000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관대한 보험체계의 '도덕적 해이'의 값을 치르고 있다.

이대로는 건강보험의 적자 누증이나 의료서비스 수준 저하를 막을 수 없다. 중증 환자와 가족의 불안도 해소될 수 없다. 삼성경제연구소 강성원 수석연구원은 "경증 진료에 대한 가입자 부담을 조정하면 추가적인 정부부담금 없이도 중증 진료에 대한 가입자 부담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강 연구원의 추산에 따르면 경증 환자 부담을 진료비의 33%에서 45%로만 올리면 된다(중증 진료비는 경증의 약 40배에 이른다). 그래서 경증 환자의 외래방문이 줄어든다면 정부부담금 절약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가입자도 좋고 정부도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一石二鳥)라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1차 진료는 좀 더 철저히 개인병원이 특화하고 다음 단계의 진료부터 종합병원이 맡도록 하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질환을 줄이되 비보험 질환과 고급 진료 서비스에 대한 민간 의료보험을 활성화하는 걸 고려할 때가 됐다.

경증을 다스리면 중병에 걸려도 집안이 흔들리지 않는 건강보험을 만들 수 있다. 다수의 국민에게 부담과 불안을 떠안기지 않는 '상생의 건강보험'으로 다시 서기 위해 '잔병에 종합병원 찾기'를 이젠 자제하자.

김정수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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