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많은 방통위법 국무회의 통과됐는데…"위원 구성은 다음 정부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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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노무현 대통령은 3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구성은 법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이번 정부가 아닌 다음 정부에서 해도 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방통위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중 대통령이 사실상 위원 전원을 임명토록 한 조항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보고받은 뒤 이같이 말했다고 윤승용 홍보수석이 전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방통위원 5명을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되 이 중 2명은 관련 단체의 추천을 받도록 한 이 법안이 통과됐다. 방통위원을 추천하는 단체는 방송.정보통신 관련 학술단체와 언론.변호사.경제.문화예술.과학기술.여성.소비자.시청자 단체 중 규모가 크고 부문별 대표성이 있는 단체라고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설명했다. 대통령은 이들 단체가 각자 추천한 인물 중 두 명을 고르면 된다.

노 대통령은 "방송의 독립성 문제는 별도의 위원회에서 하는 것"이라며 "방통위원 구성에 대해 정치적으로 계속 의구심이 제기된다면 위원 구성은 다음 정부에서 해도 된다는 의견을 명확히 하라"고 말했다. 윤 수석은 "(방통위원 선임을 다음 정부에 넘기는 것을) 부칙에 달 수도 있다"며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면 6월에 시행되는데 그렇더라도 시행은 미룰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또 "새로 설립되는 방통위는 방송통신 정책 및 행정의 집행기관이므로 다음 정부가 누가 되느냐와 관계없이 정부에 속해야 한다"며 "완벽한 독립기구라는 건 존재하지 않고 국민으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은 기관이 책임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원 임명 방식이 결정된 과정에 대해 윤 수석은 "브레인 스토밍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도 "위원 선임 방식은 국무조정실장이 대통령과 총리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결정됐다"고 말했다.

방통융합추진위원회는 지난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추천이 필요하다"는 데 대체로 동의했으며 시민단체의 추천을 받자는 의견은 소수 안에 있었다.

최현철 기자


▶뉴스분석

"독립성 훼손" 비난 피하기 미봉책

국회 논란 클 듯 … 업계 불만 고조

노무현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회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방통위원의 임명은 차기 정부로 미룰 수 있다고 제안했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사실상 방송통신위원회 구성의 문제점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방통위원 임명 방식의 문제는 방통위원 전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다. 방송.통신과 관련된 대부분의 정책을 수행하는 방통위원을 통해 대통령이 방송을 장악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말대로 자신의 임기 안에 방통위원을 뽑지 않는다고 방통위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누가 됐든 위원회의 독립성 훼손이나 방송 장악 우려는 그대로 남는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쏟아지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 처리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심재철 홍보기획본부장은 "노 대통령의 발언은 기구는 만들되 사람은 뽑지 않겠다는 소리"라며 "이런 식의 법안은 자기 임기 안에 과제 하나를 끝내겠다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방송통신위원을 전부 대통령이 뽑겠다는 것은 언론을 정권 아래 두겠다는 발상"이라며 "이 법안의 국회 통과를 강행하려면 마찰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업계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방통위 설립이 늦어지면 이미 투자를 마치고도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매년 1조원씩 날리고 있는 현실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IPTV 서비스를 위해 지난해에만 500억원 이상을 투자한 KT 관계자는 "올해 세계적으로 IPTV 가입자 수가 지난해보다 192% 증가한 1450만 명에 이를 전망"이라며 "우리는 준비를 다 해놓고 기다리고 있으며, 올해 안에 관련 제도가 꼭 만들어지기만 바랄 뿐"이라고 호소했다.

방통 융합 관련 다른 서비스도 지연이 불가피해진다. 정부는 그동안 문화 콘텐트와 부처 간 기능 조정, 우정사업 분리 문제 등 산적한 사안에 대해 "통합기구가 주도적으로 처리할 문제"라며 방통위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방통위 설립이 지연되면 이런 사안의 진척도 보장할 수 없는 상태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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