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일번가<서울 동숭동>|이진수<연극배우>|떨어지면 곧 채워 주는 푸짐한 밑반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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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마로니에공원 한복판에 있는 문예회관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크고 작은 극장들이 널려 있는 서울 동숭동 대학로는 모든 연극인들에게 마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그래서 대학로 주변엔 언제나 연극인들이 모여들어 연극얘기에 날이 새고 밤이 깊어 간다. 마음에 맞는 동료와 만나 연극얘기에 열을 올리다 보면 어느새 땅거미가 지기시작하고「딱 한잔」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럴 때마다 찾게 되는 곳이 대학로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대학로 일번가」(744-6063)라는 일식 집이다.
이 집에 가서 늘 먹게 되는 것은 광어·민어·도다리 등의 모 듬 활어회 한 접시와 소주 몇 병. 깔끔하고 담박한 회 맛은 다른 일식 집들과 다르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 집을 찾게 되는 것은 푸짐한 밑반찬 때문이다.
생선구이·무 조림·굴·뱅어·오징어·장어 등 해물, 야채·미역 등 가짓수만도 13∼14가지나 되는 밑반찬은 갈 때마다 내용이 달라지고 떨어지면 알게 모르게 채워 넣어 주는 주인의 훈훈한 인심이 흡족한 기분이 들게 한다.
주머니사정이 변변치 않은 연극인들에게 일식 집은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집은 풍성한 밑반찬 때문에 모듬회 작은 것 한 접시만 시켜 놓으면 서너 명이 둘러앉아 안주가 모자라는 일없이 술을 나눌 수 있다.
대학로 낙산 가든 골목을 쭉 따라 올라가다 동숭아트센터 3층 건물의 1층에 있는 이 집에 처음 갔던 것은 5년 전 쯤 친구와 함께였다. 술도 충분히 마시고 안주도 모자람이 없었기 때문에 가격이 비쌀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싸게 나온 것을 보고 그 이후 계속 단골이 되었다.
서너 명이 실컷 술 마시며 만족스럽게 안주 먹고 하루저녁 3만5천 원선. 이 정도 가격으로 다른 곳에서는 이곳에서 느끼는 것만큼의 만족감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애주가들에게는 안주가 목적이 아니라 술을 음미하며 즐겁게 마시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부족하지 않다는 느낌과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최고다. 또한 늘 이곳에 들르면 한두 사람의 낯익은 연극인들 얼굴을 볼 수 있어, 생각지 않게 합석해 연극얘기로 즐거운 하루 저녁을 보낼 수 있는 경우도 많아 즐겁다.「대학로 일번가」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낭만의 휴식처라고 부른다.
모듬 활어 회 가격은 큰 것이 4만4천 원, 중간이 3만4천 원, 작은 것이 2만7천 원이고 소주 1병에 1천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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