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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시시각각

신 행복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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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나라 신문의 수많은 도표 가운데 유독 독자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게 있다. 매주 등장하는 부동산 시세표와, 입시철마다 선보이는 수능점수별 대학 배치 기준표가 그것이다. 그렇다고 신문들이 이들 표를 빠뜨리지 않는다. 독자들도 제일 안 보는 척하면서, 그래도 가장 많이 보기 때문이다. 아파트 평수에 따라 계층이 나뉘고, 학벌에 대한 집착이 사교육 열풍으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이런 경쟁이 지배하는 한 아파트 시세표와 점수별 대학 배치표에 중독될 수밖에 없다.

5년 전 미국 경제학협회는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례 학술대회에서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첫째,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통설은 잘못됐다. 돈과 행복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연간 9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자들은 2만 달러 이하의 저소득층보다 두 배 이상 행복을 느낀다고 보고됐다. 개인의 행복은 재산과 소득에 비례한다는 게 입증된 것이다.

하지만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둘째다. 행복은 타인의 부(富)나 자신의 욕망과는 반비례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수입이 늘어나도 다른 사람의 소득이 더 빨리 증가하면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으며, 수입이 늘어난 만큼 인간의 욕망도 늘어나게 마련이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행복은 좀 더 주관적이며 상대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행복은 경제력 순이 아니라 건강.교육.가정환경 등 주관적 요소들까지 포함해야 하며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보다는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옷이라는 상대적 개념이 행복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동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부동산 시세표와 대학 수능점수에 목을 매는 우리 사회는 지극히 건강하지 못하다. 경쟁에서 이긴, 피라미드의 정점에 선 극소수만 행복을 느낄 뿐이다. 우리 사회가 경제 수준보다 행복 척도가 훨씬 낮게 나오는 것도 그래서일까. 지난해 영국의 한 대학이 건강(평균수명).재산(1인당 국내총생산).교육(중등교육 이상을 받을 가능성) 등을 합해 조사한 '행복지도'에서 102위에 그쳤다. 영국에서 나온 2005년판 행복지수에서도 조사 대상 70개국 가운데 40위에 그쳤다. 1인당 소득이 1400달러밖에 안 되는 부탄(8위)에도 미치지 않을 만큼 우리 사회는 행복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지난 연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커버스토리 '행복과 경제'에서 경쟁 위주의 자본주의에서 행복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행복을 유도하는 방안에 대해 이렇게 권고한다. "다양한 가치관을 존중하라. 미국의 경우 대중음악 가수에서 요리사까지 명예의 전당만 3000개가 넘는다." 물질적 성취와 관계없이 사회적 인정만 받아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잡지는 또 자신을'환경근로자'로 자부하는 미국 신시내티의 벌목공을 소개했다. 자기 만족과 긍정적 사고를 통해 충분히 행복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 시세표와 대학 배치표는 어떤 사회나 있게 마련이다. 다만 이것만으로 행복을 재는 사회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자본주의가 한 사회를 부유하고 자유롭게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지는 의문"이라고 되물었다. 정치가 나아지고 경제가 좋아진다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쪽으로 변모한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더 행복해질지 모른다.

이철호 논설위원